151호 [편집위원의 세상보기] 게시판 문화에 대한 단상
2003-04-04 14:37 | VIEW : 23
 
151호 [편집위원의 세상보기] 게시판 문화에 대한 단상

권희철 편집위원

우리는 요즘 동창회를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에 습관적으로 접속한다. 또 하루에 몇 차례 들리는 자유게시판들도 있다. 약간의 예외는 있겠지만, 커뮤니티를 통해서는 가벼운 농담들을 주고받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자유게시판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여기엔 풍성한 언어가 있다. 극단적인 지적 유희에서 표현할 수 없는 욕설까지. 자유게시판은 익명의 사람들로 구성되고 그 제한조차 없다. 이것이 커뮤니티와 다른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이다. 커뮤니티는 분명 ‘우리’라는 울타리가 있다. ‘나’는 우리의 일부이거나 ‘우리’는 나의 확장이다. 그러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여기서 어떤 논쟁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하지만 자유게시판은 다르다. 물론 여기에도 편가름과 패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순간적인 ‘접속’일 뿐, 어떤 영속적인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들이 모이고 예상 못한 언어가 넘실댄다.
지난해말 ‘운동사회 내 성폭력뿌리뽑기 100인위원회(이하 100인위)’는 운동집단의 뿌리깊은 성폭력을 문제삼으며 해당 당사자들의 실명과 행태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에 대한 찬반공방이 ‘진보넷BBS’를 포함한 여러 게시판들에서 있었다. 반대하는 측은 줄곧 그 공개행위의 타당성을 묻고 100인위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문제삼았다. 또 찬성 측은 그 공개 배경을 설명하며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논지를 폈다.

100인위의 다소 선정적인 공개부터 논의는 줄곧 선전포고의 형식을 띤다. 문제는 어느 집단이 파시스트적이냐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상반된 입장들 모두 논의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갖는 게 문제다. 그런데 이를 온라인 상에서의 일로 무시하거나 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시각은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글을 읽는 개인의 행위를 단지 취미거리로 치부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미 생활의 한 풍경으로 자리잡았음을 감안한다면, 이를 개인의 적극적인 행위라 해야 옳다.물론 사태의 외관만을 본다면, 도저히 합리적으로 토론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이는 자유게시판이라는 공간이 규정한다기보다 그 화젯거리의 성격이 결정하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창비 게시판’이다. 이곳에 수많은 문학인들이 모여들었고 또 문학권력논쟁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곳에도 자기 현시와 위압적인 언어들이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문학의 민주주의가 대세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점잖은 어르신네들이 본다면, 게시판에 참여하거나 검색하는 이들을 한심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리라. 의자에 앉아 진득하게 책을 파라고, 말은 아껴 쓰고 가려 듣는 법이라고.
하지만 이런 식의 사고에서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오로지 세월뿐이리라. 순간을 외면하는 지식은 영원조차 기대할 수 없는 법.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말을 많이 해라, 그것도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옥석을 가리는 것은 추후의 일이며, 방향의 결정은 우리 몫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태도야말로 끊임없이 현실을 문제삼는 실천적 지식의 바탕이 아닐까. 우리 대학원에도 뜨거운 말들이 넘쳐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