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호 [논쟁따라잡기]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노동자 1
2003-04-04 14:49 | VIEW : 35
 
159호 [논쟁따라잡기]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노동자 1
불리한 함정, 노동시간 단축

홍석만/사회진보연대

정부와 노사정위원회가 정말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하여 노동시간 단축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게 여긴다면, 이것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생각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의 근로시간단축 특별위원회의 공익위원 안을 보아도 현실은 자명하다. 공익안은 첫째,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1년 단위로 확대하고 둘째, 초과근로시간·수당 등은 현행 유지하면서 유급생리휴가를 폐지하는 등 주5일 근무제에 대한 대가로서 노동조건의 악화와 유연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상황을 과연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5일 근무제 도입과 관련하여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이것이 저임금·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영세사업장·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조사 사업장의 64.7%가 노동관계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정휴일과 휴갇생리휴가조차 무급 처리된 채 주당 5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관계법이 무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5일 근무제는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거의 실익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 속에서 노동 기본권의 단계적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중심 주장은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기본권을 보다 확대시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권 수준을 그에 맞게 신장시키자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에는 비정규직에 대한 법적인 보호를 보다 강화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신자유주의 세력 주도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 논의 자체가 노동의 분할을 더욱 강화하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본과 정권이 정규직/비정규직, 대공장/중소·영세사업장, 남성/여성의 이해를 서로 분할시켜 온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일련의 노동법 개악에서도 똑같은 태도로 일관했다. 복수노동조합금지 5년 유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며, 여성관련 근로기준법을 개악하면서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을 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렸다.

  노동시간 단축논의도 예외는 아닌데, 주5일 근무제의 대가로서 주휴무급화·노동시간 적용제외 확대가 현실화된다면, 이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정당화시키게 된다. 뿐만 아니라 변형근로 시간제의 확대, 연장근로한도의 확대와 할증 임금률 저하마저 동반된다면, 비정규직은 물론 정규직 노동자들까지도 무급의 장시간 노동의 대상이 될 것이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이라는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의 절박함으로 인해 현재의 본질과 전체적 진행과정에 눈감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민중의 과제는 주5일 근무제를 전제로 한 노동권 후퇴조건의 수용여부를 어느 수준에서 용인할 것인가에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노동기본권 사수와 노동유연화 분쇄 투쟁을 통해 노동진영의 분할-배제-포섭전략을 극복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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