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호 [논쟁따라잡기]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노동자 2
2003-04-04 14:50 | VIEW : 29
 
159호 [논쟁따라잡기]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노동자 2
최장 노동시간 벗어나야

박영삼/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기획국장

오늘날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불안정한 장시간 노동체제’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가 이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은 상태에서 세계 최장시간의 노동이 강요되고 있다. 가혹한 장시간 노동과 엄청난 규모의 비정규직의 존재, 이것이야말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불문하고 한국의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극단적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기묘한 역설을 동원한 주장이 횡행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비정규직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의 깃발을 내려야 한다”는 선동과 “비정규직 보호입법도 말로만 보호일 뿐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려는 개악의도”라는 또 다른 주장이 그들의 플랭카드 뒷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시간 단축도 비정규직 보호도 차라리 요구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것이 이 주장을 유포하는 사람들의 결론이다. 이 주장은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으며 그것이 갖는 선정성으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유포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노동시간 단축이 휴갇휴일의 축소, 장기간의 변형근로제와 결부되어 시행된다면 힘없는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을 위험이 높다. 특히, 주휴일의 무급화가 확정될 경우 용역업체 노동자들과 일용·호출·파트타임 등 일급제 형태의 노동자들, 업적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도급·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임금손실이 우려된다. 이와 함께 단계적 법률시행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새로운 제도의 적용이 상당기간 지체될 경우 대기업의 하청화, 용역화가 급속히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그러나 이 모든 우려들은 실은 법정노동시간의 단축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결국 노동시간단축과 비정규직 보호가 반드시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일임을 재확인하게 만들 뿐이다. 연·월차 휴가의 통합은 1년 미만 임시직도 연차휴가 수급권을 갖게 됨으로써 그나마 확실한 혜택을 보는 부분이다. 나머지 문제들도 주휴무급화 문제를 제외하면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라 ‘아무런 변화가 없음으로 인해’ 입게 되는 상대적인 피해들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비정규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추구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법정노동시간단축 이외의 방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시간단축 자체를 반대할 명분은 되지 못한다. 다만, 주휴무급화의 문제는 반드시 법률로 그 피해를 막아야 할 사안이다. 시간급(일급제) 및 개수임금 노동자가 노동시간단축의 희생양으로 휴일을 잃게 되는 일은 심각한 모순이다. 주휴무급화에 관하여 시간급 및 개수임금 노동자의 임금보전 방안이 반드시 법률에 삽입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할 그룹은 비정규 노동자가 아니라 제조업의 장기근속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시간단축을 반대한다면 옳고 그름을 떠나 자연스런 의사표현이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이유를 앞세워 시간단축과 심지어 비정규직 보호입법에 대해서도 ‘사보타지’만을 주장하는 일부의 움직임이야말로 중단되어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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