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호 [시사기획] 대안교육, 요람에서 무덤까지 - ① 공동육아, 대안교육의 출발점
2003-04-04 14:58 | VIEW : 22
 
162호 [시사기획] 대안교육, 요람에서 무덤까지 - ① 공동육아, 대안교육의 출발점
함께 크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어른들

황윤옥 /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사무총장

함께 크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어른들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 자기가 죽지 않으려면 남을 죽여야만 하는 사회. 이 속에서 조용하게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 한 가운데 ‘대안교육’이 서있다. 과연 대안교육은 새로운 도약으로 적절한 것인가. 혹여 새로운 공상주의의 부활은 아닌가. 대안교육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또 다른 대안을 구성하기 위한 출발점일 것이다. 이제 대안교육의 현장 속에서 우리의 고민을 시작해보자.    <편집자 주>

하나, ‘터전’이라 불리는 어린이집

하현이(지금은 여덟 살인 우리 딸 하현이는 부천공동육아협동조합 ‘산어린이집’을 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 4년을 다녔다)는 산어린이집 다닐 때 한번도 어린이집이라고 해본 적이 없다. 항상 ‘터전’이었다. 하현이에게 산어린이집은 놀이터요, 배움터요, 쉼터였다. 하현이만이 아닐 것이다. 공동육아를 하는 부모나 교사, 아이들에게 각 어린이집은 무슨 보육시설이나 교육기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삶터’이다.그럼 이 삶터는 어떻게 구하는가. 부모들이 출자금을 내어 전세금을 만들어 구하러 나선다. 산어린이집을 처음 만들 때 하현이는 복덕방에 흔히 있는 검은 색 쇼파만 보면 화를 냈었다. 터전을 구하느라 하현이를 데리고 하도 여러 복덕방을 순례한 탓에 하현이는 복덕방에 들어가 검은 색 쇼파만 보면 부르르 떨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구한 ‘터전’이다. 부천만 그랬겠는가! 지금도 공동육아협동조합을 만들고 있는 부모들은 어느 동네 복덕방을 헤매고 있으리라. 왜 이렇게 터전에 공을 들이는가. 이는 우리 아이들을 맡길 시설물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함께 클 ‘삶터’이기 때문이다.

둘, 아이를 맡기러 왔다가 조직원(?)이 된 부모들

공동육아협동조합 워크숍에서 강동구 ‘재미난 어린이집’(이하 재미난) 이사장은 재미난을 이렇게 소개했다. “재미난은 조직입니다”. 왜 공동육아는 조직인가. 그것은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로 키우기 때문이다. 부모가 공동체 안에 없는데 어찌 아이들만 공동체적으로 크겠는가. 터전에 오면 내 아이가 아니라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아이를 안아준다는 것은 공동육아십계명의 가장 첫 자리이다.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함께 바라본다는 것, 이것이 공동육아의 출발이다. 또한 공동육아가 동호회 수준을 넘어 조직이 되어야하는 이유이다. 조직원이 된다는 것, 이것은 부모 역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공동육아 부모들이 조직원으로서 누리는 기쁨이 가장 크다. 아이들만 재미나는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들도 살 맛 나는 조합이야말로 공동육아이다.

셋, 공동육아의 아이들 - ‘미안해’와 ‘괜찮아’

며칠 전 하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밤도 늦고 피곤하기도 하고 불량한 엄마가 글자만 후다닥 읽고 책장을 넘기는데, 하현이의 일침 “엄마, 사과나무(하현이의 담임선생님. 공동육아에서는 모든 선생님들이 별명을 가지고 있다)가 그러는데 글자도 중요한데 그림도 중요하대!” 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우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또 우리 아이들은 사과를 잘한다. 싸우고 나면 곧 “미안해”하고 “괜찮아”한다. 그래서 공동육아 아이들의 조직(?)이 어른들보다 더 세다. 이렇게 공동육아의 아이들이 서로 맺는 관계는 참으로 각별한 맛이 있다.

넷, 너희가 츄리닝을 아느냐 - 공동육아의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산어린이집에서 부모와 교사를 구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답은 “츄리닝 입은 사람이 교사”이다. 공동육아의 교사들은 항상 아이들과 몸으로 어울린다. 그러니 일반 유치원 선생님의 예쁘고 매끈한 분위기로는 어찌 승부가 나겠는가. 공동육아 교사들의 복장은 말 그대로 전투복이다. 또 공동육아의 교사들은 별명을 부른다. 아이들도 교사들의 별명을 부르며 스스럼없는 친구가 된다. 코뿔소, 기린, 미니, 황소 등은 공동육아 교사들의 별명들이다.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바로 공동육아의 교사들이다.

다섯, 자연과 친구되기 - 공동육아의 나들이

산어린이집에서는 날마다 아침 10시가 좀 넘으면 아이들이 마당에 가득 모인다. 그리곤 손에 손잡고 나들이를 간다. 동네를 한바퀴 돌기도 하고 숲으로 가기도 한다. 날마다의 나들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연과 친구가 된다. 사월의 봄 숲에서 진달래 잎을 따서 화전을 해먹기도 하고,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겨울 숲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보기도 한다. 생명에 대한 애정과 신뢰는 결국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 공동육아 부모들과 교사들의 믿음이다.

여섯, 공동육아여 대답하라 - 공동육아를 향한 몇 가지 질문들

공동육아가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참여하는 부모나 교사도 많아지면서 공동육아를 향한 질문들도 많아졌다. 공동육아의 발전을 가늠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공동육아의 사회적 책임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중의 하나, 공동육아는 중산층만의 육아방식 아닌가, 즉 공동육아는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육아방식이 아닌가. 출자금을 생각하면 공동육아는 확실히 돈이 드는 육아방식이다. 하지만 하현이 경우 출자금 3백30만원에 다달이 보육료를 약 30만원 냈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직업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일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냈다면 오후나 저녁시간에 또 다른 보육형태가 필요했을 것이니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었을 것이다. 또한 산어린이집을 처음 시작할 때 자기 집을 갖고 있는 조합원은 전체 24가구 중 2가구였다.

대출을 받아 출자금을 마련한 조합원이 대부분이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해서라기보다는 함께 키우는 육아방식에 대한 갈급함으로 공동육아를 한다는 얘기이다. 질문 또 하나, 부모가 품이 너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냐. ‘아마활동’(공동육아의 제도 중의 하나이다. 엄마나 아빠가 직접 어린이집 보육에 참여하여 아이를 돌보는 제도로 대략 1년에 4~5번하게 된다)도 그렇고 청소도 해야하고(공동육아의 경우 부모들이 어린이집 청소를 하거나 김치를 담가오거나 하여 어린이집 운영을 책임진다) 부모에게 너무 힘든 일 아니냐. 맞다. 공동육아는 부모의 품이 많이 든다. 그러나 그 만큼 부모에게 돌아오는 것도 많다. 함께 몸으로 부딪히고 겪으며 부모도 성장한다. 어른이 된 후에 공동육아처럼 전면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참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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