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호 [사회쟁점]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 1
2003-04-04 15:00 | VIEW : 33
 
163호 [사회쟁점]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 1

죽음은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이다. 나는 어떤 원칙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또 어떻게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의 삶이 다양하듯 우리의 죽음도 다양하다. 아주 개인적인 죽음이 우리에게 하나의 거대한 제도의 무넺로 다가올 때도 있다. 아래 두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한쪽에서는 죽임을 행하지 말자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죽임을 행하자고 한다. 어떤 기준으로 죽임을 행하거나 행하지 말 것인가.<편집자주>

'사회적 죽이기'는 필요악인가

최득진/법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우리는 얼마 전 중국에서 한국인 마약사범 신 아무개의 사형집행 사건을 잘 알고 있다. 타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국가가 자국민의 외교적 보호라는 고유의 외교업무를 다하지 못하였다는 것 외에 아직까지 우리는 사형집행국가로서의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국가에 의한 계획적인 법적살인사형제도는 고전적으로 중대범죄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둘 곳이 없었을 때 사회적 무해화 혹은 위하적(威的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생명권 박탈인 사형은 그 집행에 있어서 다양하게 행해졌다. 교수형, 참수형, 화형, 능지처참형, 총살형, 가스질식형, 전기·독극물 주입형 등 시대에 따라 신체손상을 적게 하는 방법으로 변화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잔혹한 상상력이 가미된 것들이다. 특히 전쟁시에는 더욱 잔혹한 처형이 이루어졌으며, 처벌대상자도 범죄자 개인을 넘어서 가족 및 지역공동체, 민족으로 확대됐다. 여기서 먼저 야만적인 형벌인 사형, 즉 제도적 살인의 주체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극단적으로 어떤 학자들은 현대의 사형을 국가에 의한 계획적인 법적 살인이며 국가테러리즘의 한 종류라고도 지적한다. 그 이유로 사형은 개인적 살인행위와 달리 형사사법절차의 단계를 밟아 완성되고 있으며, 범죄유형으로 볼 때 격정범, 우발범이 아니라 예모범(豫謀犯)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사형은 사회적 제재나 형벌이 아니라 인간 말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개인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실존적 기초를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이념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형이 아무 저항 없이 제도로써 집행돼 왔던 것은 다음과 같은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 첫째, 질서의 안정을 위해서는 사형처럼 실효성이 있는 제재수단이 없다. 둘째, 극악무도한 반인륜적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사형보다 더 큰 위하력을 갖춘 수단은 없다. 셋째, 대다수의 사람들의 응보적 법 감정은 사형으로써만 욕구충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정당방위나 현재의 불법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것을 예외로 한다면, 이러한 사고의 틀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의 생명권 존중에 대한 입장과 유엔인권규약에서 규정하는 바와 같이 ‘모든 인간은 천부의 생명권을 가지며, 이 권리는 함부로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것에 반하는 미신적·인간 적대적 충동의 표현일 뿐이다. 그리고 사형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전근대적·권위주의적 발상의 한계일 뿐이다. 또한 자유법치국가에서 법과 국가는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법과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형의 존치론과 폐지론의 논쟁은 역사성, 비례성, 위하성, 정치성 등 다각적으로 심도있게 다뤄져야 하나, 지면상 사형의 합헌을 선언한 헌법재판소 결정례 사건의 논거 중 ‘사형위하에 의한 일반예방효과 확보’를 중심으로 살펴보자.인간의 생명이 중심에 있어야헌법재판소는 “사형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본능을 이용한 가장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그 위하력이 강한 만큼 이를 통한 일반적 범죄예방효과도 더 클 것이라고 추정되고 또 그렇게 기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나 소박한 국민일반의 법 감정에 비추어 볼 때 결코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되는 것은 과연 사형이 흉악 범죄(특히 살인범죄)를 억제하는데 효과적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엄격한 과학적 입증과 과학적 추론을 요하는 것이다.

사형이 범죄억제효과가 없다면 가장 결정적인 부분에서 사형의 ‘필요성’이 부인되는 것으로 소위 ‘필요악’의 주장은 ‘절대악’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 결정적 논거의 과학적 추론화의 시도를 피해가면서 “위하력이 강한 만큼 효과도 더 클 것”이라고 막연히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논리이다. 더욱이 예방효과를 거론하는 데 소박한 국민일반의 법 감정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은 정밀과학에 대해 소박한 의식을 대치시키고 있어 비논리적이다. 마지막으로 사형폐지에 대한 국제적인 노력의 일환인 국제사회의 선언이나 규약 등에서는 이미 생명권 개념에 사형폐지조치를 포함시키고 있다. 인류사회 인간성의 아름다움을 꽃피우고 생명권을 향유하는 데 있어 사형폐지조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 받아들여져야 할 때이다. 국가질서가 보호하고자 하는 법의 최정상에는 언제나 사람의 생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