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호 [시사기획] 대안교육, 요람에서 무덤까지 - ② 대안학교에 가다
2003-04-04 15:02 | VIEW : 34
 
163호 [시사기획] 대안교육, 요람에서 무덤까지 - ② 대안학교에 가다
대안학교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남호섭 / 간디학교 교사

한경철은 내가 가르치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다. 수업시간에 계속 옆 친구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거나 꾸무럭꾸무럭 뭔가를 뒤지거나 책의 한 귀퉁이에다가 낙서를 계속하고 있다. 20명이 한 반인 교실에서는 경철이의 이런 행동이 돌출적이다. 그러나 경철이는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음식만들기 시간에는 가장 집중력이 높은 학생이 된다. 나름의 방식으로 독창적인 음식을 만들어 보려 애쓰고 선생님의 설명에 가장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는 학생이다. 경철이는 늘 생글생글 웃으면서 기숙사에서도 학교 마당에서도 즐겁다. 그러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기분 좋아지게 인사도 잘 한다. “쌤, 안녕하세요.” “쌤, 맛있게 드세요.”

자연처럼 자라는 아이들

간디학교에서 경철이 같은 학생은 많다. 일반학교에서는 내가 가르치는 과목인 국어를 못하면 음식을 제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도 뒤쳐진 학생이 된다. 그러나 간디학교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음식을 잘 만들던지, 만화를 잘 그리던지, 춤을 잘 추던지, 영어를 잘 하던지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잘 하는 게 있다면 학교생활이 즐겁다. 국어선생인 나도 국어가 재미없을 때가 있는데 학생들은 어떻겠는가. 그러니 좋아하는 것 하나라도 제대로 찾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간디학교의 학생들은 그것을 안다. 혹시 아직 그런 행복을 찾지 못한 학생들도 기죽지 않는다. 그 누가 무엇을 못한다고 구박하는 일 없고, 차별하는 일 없기 때문이다. 천천히 또는 느리게 제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간다. 내수업 시간에 경철이는 변함없이 산만할 것이다. 때때로 내게 주의를 받기도 하겠지만 전혀 기죽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잠시 자세를 고쳐 앉는 시늉을 할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경철이는 철없고 끈기 없는 아직 중학교 2학년에 불과하지 않은가.그런데 그런 경철이가 며칠 전 새벽 밤하늘에 별똥 쏟아지는 환상적인 쇼를 꼬박 보았단다. 처음에는 기숙사 베란다에서, 그러다가 기숙사 마당에 나가서 추운 줄도 모르고 쏟아져 내리는 별똥을 감탄하며 보았단다. 제 말로는 4백80개까지 세다가 다 못 세었고 기숙사 뒷산인 둔철산 쪽으로도 두 개의 별똥이 떨어졌다고, 그 다음날 나를 만나서 신나게 얘기했다. 워낙 깊은 산중에 기숙사가 있으니 별똥 떨어지는 광경이 그 얼마나 장관이었겠는가. 제 말로는 너무나 선명해서 징그럽기까지 했다고 하니, 그 아이의 가슴에 박힐 그 밤의 추억이 평생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크게 작용하겠는가. 간디학교는 이런 학생들을 키우고자 한다. 밤하늘의 별이며 달이며, 지는 낙엽이며 단풍이며, 여름의 시원한 계곡물이며 그런 자연 속에서 스스로 배우며 크는 학생들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다.

간디학교 학생들은 중학생이고 고등학생이고 간에 표정들이 밝다. 경쟁에 찌든 청소년들의 잃어버린 본디 모습을 찾아보려면 이 아이들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머리는 노랗고, 빨갛고 심지어 초록으로 물들었어도 제 본성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아이들.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의 퇴폐적인 문화인 음주·흡연 등의 유혹에도 훨씬 자유로울 수 있다. 음주와 흡연을 하는 학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은 수이고 학생들끼리, 학생과 선생님들이 함께 그런 것들을 절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모두 기숙사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니 남을 배려하고 제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된다. 그러므로 소위 ‘왕따’같은 일은 간디학교에서 없다.

또한 폭력도 거의 발붙이기 어렵다. 학교 이름이 ‘간디’인데 어찌 폭력이 용납되겠는가. 학생 상호간에 심지어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만일에 폭력이 발생한다면 즉각 온 식구들이 다 모이는 ‘식구총회’를 열어 잘잘못을 엄히 가려 벌을 주게 된다. 간디학교에서는 이때의 벌이 가장 큰 벌이다. 이렇게 어떤 아이들은 3년, 어떤 아이들은 중학교부터 6년이 흘러 고3쯤이 되면 다 커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고3이 모든 활동에서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의욕이 넘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스로 하고 싶다는 의욕이 폭발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고 남을 배려할 줄 알게 키우고자 세운 교육목표인 ‘사랑과 자발성’의 결과일 것이다.

대안학교, 그 도도한 흐름

실제로 간디학교에 첫발을 디딘 올해 초 나는 그들이 다 큰 어른으로 느껴졌다. 내가 10년 넘게 가르치던 학생들과 분위기가 너무 달라 내심 당황하기도 했다. 격의 없이 다가와 제 이야기를 하는 당당한 모습들이 차라리 낯설었다. 4월 초였던가 교무실 창가에 머릿수건을 하고 편안한 바지를 입은 아주머니 두 분이 나타나 이제 막 캐온 듯한 냉이를 한 바구니 내게 내밀었다. 웬 분들인가 하고 자세히 봤더니 바로 고3 여학생 둘이었다. 집에 가서 무쳐 드시고 국 끓여 드시라고 내게 가져온 것이다. 그때 그 여학생들이 냉이 바구니를 들고 웃던 모습은 나의 일반학교에서 10년 넘게 교사로 지내면서 겪었던 안 좋은 기억들을 깨끗이 씻어주고도 남았다.간디학교는 대안학교다. 학생들의 대안학교이자 교사들의 대안학교이다. 그리고 입시 위주·경쟁 위주 학교들의 당당한 대안이다.

이렇게 해도 교육이 되고, 학교가 된다는 것을 간디의 아이들이 밝은 모습으로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간디학교는 지금 크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가 받지 못한 중학교를 폐쇄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했단 이유로 교육청에 고발당한 교장선생님은 재판을 받고 있고, 이미 인가 받은 고등학교에 대해서는 선생님들의 봉급으로 지급되던 재정지원금을 교육청이 끊은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날로 확산되는 교육의 다양성에 대한 요구를 저버린 경상남도 교육청의 어처구니없는 일 처리로 인해, 우리 교육에 대안을 제시하고자 지리산 자락 산청의 불모지에 깃발을 꽂았던 그 순수한 열정이 방해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어리숙한 훼방꾼의 잠시 길막음일 뿐, 그 누가 이 도도한 대안교육의 흐름을 막을 수 있겠는가. 함께 하고자 달려오는 사람들의 함성이 이렇게 크게 들려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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