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호 [시사기획]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신사회운동-① 자유, 보수, 신자유주의
2003-04-04 15:05 | VIEW : 31
 
165호 [시사기획]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신사회운동-① 자유, 보수, 신자유주의
우리에게 새로운 자유를 주었는가

신광영 교수 / 본교 사회학

신자유주의는 세계를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고 전세계적인 고용불안과 경제침체의 바다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이에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좀더 심도있는 접근과 아울러 지금까지의 관점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신자유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모든 정치적 언어는 만들어진 언어이다. 즉,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고, 논리를 만들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새로운 용어들이 만들어진다. 그런 용어들이 사회과학 담론으로 흘러들어 하나의 사회현상을 지칭하거나 분석하는 개념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이러한 형태로 진화한 용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인들과 매스컴이 만들어 낸 용어이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출발부터 개념적으로 명확한 근거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초기 보수적인 정치인들인 영국의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내세운 보수주의적인 정치이념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신보수주의와 동일시되었다. 초기와는 달리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정치적인 이념보다는 경제 이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고전적 (구)자유주의는 구체제에 저항하는 진보적인 정치적, 경제적 이념 혹은 철학이었다. 루쏘나 로크의 자유주의는 정치적으로 구체제의 왕권에 도전하여 시민들의 권력을 옹호하는 철학적 이념으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국가권력을 독점한 왕과 귀족 대신에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대표를 통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대의제도가 고전적 자유주의의 산물로 나타났다. 대의제가 전제로 하는 참정권의 실질적인 행사를 위하여 언론, 사상, 출판, 결사의 자유 등 자유권적 기본권이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획득된 주된 성과물이었다.

경제적으로 고전적 자유주의는 사적소유권을 국가나 다른 어떤 주체도 간섭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로서 인정하였다. 고전적 자유주의를 옹호한 집단이 부르주아지였고, 그들은 중세적인 왕과 귀족의 통제와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기를 원했다. 경제적인 차원에서 고전적 자유주의는 시장을 위한 생산과 자유로운 시장거래를 강조하는 시장자유주의를 내세웠다. 그러므로 고전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차원과 경제적 차원에서 공통적으로 구체제에 도전하는 새로이 등장하는 산업부르주아지의 이념을 반영했다.

신자유주의는 보수적인 정치적, 경제적 이념

신자유주의는 20세기에 이루어진 진보적인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주의적인 정치적, 경제적 이념이다.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달리 진보적인 정치적, 경제적 이념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진 진보적인 변화를 과거로 돌리려는 정치적, 경제적 이념으로 등장했다.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식 경제정책을 비판하면서 국가의 시장 개입 혹은 국가의 경제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기능을 최대화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주장하였다. 모든 국가의 개입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시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자유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프리드만과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은 서구 경제위기를 국가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시장의 자기 조절적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처방전으로 제시하였다. 국가의 보이는 손을 다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자들은 무역, 산업안전, 노사관계, 교육, 복지 등의 분야에서 제도화된 다양한 국가의 규제를 경제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비판하고 있다. 더 나아가 경쟁적인 시장임금 대신에 임금교섭을 통한 임금의 결정도 비효율성을 낳는 주범이라고 비판하여 반노조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영 혹은 공영 기업의 민영화, 국가복지의 축소 등을 추진하였다.

정치적인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크게 다르다. 신자유주의자를 옹호하는 정치인들은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강조하고, 보수적인 사회질서를 내세우면서 오히려 개인이나 집단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전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했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과는 달리 전통으로의 복귀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대처나 레이건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치가들이 신보수주의자로 불렸다. 서구의 경우 기독교 도덕과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여, 이혼과 낙태와 같은 사회현상을 도덕적으로 비판하고,  주부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여 전통적인 성적 분업체제를 옹호하였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강한 보수주의적 혹은 복고주의적 성격을 보여주었다.

세계를 지배하려는 시장 질서

신자유주의는 정치적으로 1970년대부터 대두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이론들은 이미 전부터 존재했지만, 1970년대 이전까지 실질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대처와 레이건은 케인즈주의적 개입 국가의 실패를 공격하면서 정치적으로 부상했다. 1970년대 서구 경제의 위기가 서구 내부의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제3세계 자원민족주의에 기초한 석유파동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보수주의자들이 선거전략으로 신자유주의를 내세우며 국가의 경제 개입과 복지국가 체제를 비판하였다. 대처와 레이건의 당선으로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이데올로기로 부각되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영국과 미국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은 기업집단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조건에서 이미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대자본이 더욱 더 자유롭게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주역은 초국적 기업들이다. 초국적 기업들이 세계 시장 교역의 2/3을 차지하면서, 초국적 기업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동구권의 붕괴로 자본주의 시장 체제가 전지구적으로 확대되면서 시장만능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에게 특히 초국적 자본에게 자유를 무한대로 허용하였다. 반면에 노동자들은 시장의 변화에 따라서 삶이 불안정해지고, 생존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통제되지 않는 시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은 실업과 빈곤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새로운 환경을 맞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이 전제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를 유토피아로 그리고 있다. 신이 죽은 근대 이후의 시대에 신자유주의를 통하여 “시장”은 새로운 “신”으로 등장하였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움직이는 시장”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신”으로 사람들의 운명을 지배하는 새로운 신이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손”을 언제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주장한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