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호 [시사기획]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신사회운동 - ② 신자유주의와 제국
2003-04-04 15:08 | VIEW : 16
 
166호 [시사기획]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신사회운동 - ② 신자유주의와 제국
예나 지금이나 자본에게 국경은 없다

박상현 /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역사의 거대한 변화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정작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원인 모를 변화들에 떠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IMF 구제금융 신청과 일련의 구조조정은 오늘날 우리가 바로 이러한 역사의 격동 속에 놓여 있음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요동치는 현실 속에서 그것의 추세와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닻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의 외형적인 확산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구체적인 실체에 대해서는 충분한 분석이 부족하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신자유주의를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는 금융세계화의 경향과 관련시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대체로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정책이자 이데올로기를 지칭한다. 그것은 대처나 레이건 정부의 신보수주의적 정책이나 이데올로기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제3세계 외채위기에 해법으로 제안된 신흥시장 육성전략과 그 속에서 활동하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금융세계화라는 현상과 결합되기 때문이다. 특히 신자유주의는 신흥시장, 즉 새롭게 형성된 주식 및 증권시장을 육성시키는 일련의 정책개혁을 내포하고 있다. 금융시장 개방, 금융자유화, 기업지배구조조정, 저금리 정책 등은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시장의 원리’가 금융의 원리임을 시사한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그에 뒤따른 금융적 팽창은 종종 19세기말의 상황과 유비되곤 한다. 왜냐하면 19세기말에 전세계 자본주의의 토대를 구성했던 영국의 자본 축적체계가 위기에 직면했고, 그 후 런던의 금융가를 중심으로 금융적 팽창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의 자본주의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이윤율의 저하 속에서 산업적 팽창의 한계에 부딪혔고, 이는 자본수출과 같은 금융적 팽창으로 자본을 이동시켰다.

시장의 원리가 금융의 원리

그러나 금융적 팽창은 물질적 팽창과 달리 자본의 집적 없는 집중, 노동의 불안정화 등을 동반한다. 따라서 그것은 투기적인 금융 활동을 통한 일시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게다가 인류의 역사는 초민족적 금융 팽창과 민족적 자본들 사이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충돌을 보여준다. 20세기 초반은 제국주의 전쟁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급속한 금융적 팽창을 통해 가공 자본을 수취했던 영국의 금융가 집단과 영국을 따라잡기 위해 민족적-산업적 역량을 동원했던 독일의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극적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역사는 반복되지만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영국 자본주의와 미국 자본주의의 차이점과 오늘날의 ‘금융세계화’가 가지는 특수성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두 번의 세계전쟁 이후 미국은 세계 헤게모니 국가가 되었다. 그것의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 미국의 자본주의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특성을 가졌다. 그것은 법인자본이라는 새로운 산업적 자본형태를 발명했고, 금융 억압에 기초한 케인즈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정착시켰다. 대외적으로도 그것은 영국 자본주의 시대의 식민주의나 자유무역주의와는 구별되는 토대 위에 구축되었다. 미국 자본주의는 형식적이지만 민족자결주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미국 자본주의의 대외적 팽창은 ‘반공주의’를 배경으로 한 자유기업주의, 즉 법인자본의 해외직접투자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서 일본과 한국, 대만 등은 반공과 발전의 ‘쇼케이스’로 법인자본의 진출이 자제되었다.  

1970년대 이후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미국 자본주의의 토대를 이루던 법인자본의 급속한 초민족화와 금융화를 낳았다. 이와 함께 금융에 대한 통제에 근거한 케인즈주의적인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은 철폐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크게 두 단계를 통해 진행되었다. 먼저 1980년대 신보수주의자들의 ‘정부실패론’은 케인즈주의를 무력화시켰고 이들의 고금리, 고달러 정책은 초민족적 은행의 팽창을 낳았다.

초민족적 법인 자본의 세계를 재편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국내적으로는 사회적 갈등과 은행 신용의 위기를 낳았고, 국제적으로는 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의 외채위기와 외환위기를 낳았다. 그 후 금융적 팽창은 전세계적인 주식시장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초민족적 법인자본과 연금기금이나 헤지펀드 등과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득세했다. 이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신자유주의는 ‘정책개혁론’으로 무장하고 경제적으로는 증권시장의 부양을 사회적으로는 비정부기구를 통한 갈등의 관리를 추진했다. 신자유주의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통한 신흥시장의 육성을 제안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제3세계의 외채는 종종 주식으로 전환되고, 초민족적 법인자본은 사실상 해외직접투자나 금융투자를 결합시켜 금융적 팽창의 성과를 독점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끊임없이 증권시장과 주주의 이해에 의해 지배되고 종종 단기적인 비용의 삭감을 위해 노동의 불안정화를 촉진시킨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전쟁을 예견하면서 영국의 개혁적 자유주의자였던 홉슨(John Hobson)은 <제국주의론>에서 당시의 영국사회를 제국주의라 칭하며 그 특징을 금융적 팽창에 따른 기생성과 부패성으로 묘사했다. 1차 세계전쟁의 과정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슬로건을 통해 러시아에서 혁명을 추동했던 레닌은 1차 세계전쟁에도 불구하고 금융적 팽창의 기생성과 부패성은 사라지지 않았고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라고 주장했다. 제국주의를 국가독점자본 내 특정분파의 사악한 정책으로 이해했던 힐퍼딩과 달리 그는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의 필연적 경향으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와 금융세계화는 과거와 같은 제국주의적 전쟁으로 귀결될 것인가? 이에 대한 선험적인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금융적 팽창은 과거의 그것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오늘날의 금융적 팽창의 주요한 행위자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으로서 전세계는 이들의 활동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 결과 과거와 같은 독점자본의 민족적 팽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전세계의 금융 네트워크와 이른바 ‘세계도시(global city)’를 거점으로 활동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세계는 ‘자본의 국제주의’와 이에 따른 배제와 포섭의 이중적 과정에 의해 지배된다. 동유럽이나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은 이제 착취나 제국주의적 팽창으로부터도 배제된다. 중심부 국가들 내에서도 자신들만의 담장 도시를 구축하는 ‘성공한 자들의 이탈’로 인해 도시간 불평등이나 도시 내 불평등은 심화된다.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제국주의’라 칭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제국 없는 제국주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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