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호 [아웃사이더] 댁네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2003-04-04 15:10 | VIEW : 22
 
166호 [아웃사이더] 댁네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정용욱 /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양심(conscience)이라는 말은 ‘자신에 대한 앎’이라는 뜻의 라틴어 ‘conscientia’에서 유래했다. 이는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있는 가치판단의 개념이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을 뜻하는 말로서, 사람들마다 모두 다른 신념과 양심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발칙한(?) 단어가 우리 사회에 알려진 이후, 이를 둘러싸고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보면 이러한 개념은 아직 한국사회에는 아득히 먼 이야기로만 느껴진다.

얼마 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몇몇 활동가들과 함께 한국에서 해외대체복무 중인 한 독일인 청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국과 같이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이미 동서 냉전 때부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대체복무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 청년 역시 고등학교 졸업 후 자신의 기독교 신앙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복무를 신청하여 현재 세계 분쟁지역을 오가며 다양한 평화봉사활동을 수행 중이었다.

그의 이야기 중 무엇보다도 흥미를 끌었던 것은 개인의 양심에 대한 사회적 인식 태도였다. 독일의 경우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면서 처음에는 군법정에서 무척 까다로운 질문들로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을 심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인간의 양심을 테스트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가 논란이 되고 헌법재판소에까지 제기되면서, 지금은 편지만으로도 신청이 가능하게끔 절차와 방식이 간소해졌다고 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꼽히는 독일도 개인의 양심이 특정한 기준에 따라 자의적으로 판단될 수 없다는 것을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사회적 차원에서 받아들인 노력에 있지 않을까? 그 과정에 들어간 사회적 비용은 결국 개인의 존엄성과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모습으로 구성원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으로 대표되는 안보논리와 집단주의가 양심을 판단하고 처벌하는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양심은 더 이상 그 설자리를 잃는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병역거부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일상적인 억압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의 양심이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경우 돌아오는 것은 가차없는 처벌과 배제일 뿐이다.

이렇듯 양심의 이유만으로도 단죄 받아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양심을 발견할 기회는 물론, 양심에 대해 성찰해 볼 여유마저 차단 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양심은 자신도 모르게 획일화돼 가고, 남의 양심을 훼손하는 행위에도 무감각해져 버린 건 아닐까? 이제 더 이상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획일적인 잣대로 양심을 강제하는 행위는 그만 되어야 한다. 왜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올 테니까.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