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호 [시사쟁점] 인간복제를 통해 본 과학기술의 거짓말
2003-04-04 15:12 | VIEW : 28
 
168호 [시사쟁점] 인간복제를 통해 본 과학기술의 거짓말
돈과 생명의 화려한 연금술

박소연 / 과학학과 박사 2차

작년 11월 미국의 생명공학 벤쳐기업인 어드밴스트 셀 테크놀로지(ACT)의 인간 배아복제 성공 발표 이후, 2002년 3월께 체세포에 난자를 이식하는 방법으로 인간을 복제할 것임을 공언했던 이탈리아의 인공수정 전문의 세베리노 안티노리 박사가 결국 대형사고를 하나 친 것 같다. 얼마전 영국의 뉴사이언티스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안티노리 박사가 자신의 인간 복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수천명의!) 불임 여성 중 한 명이 임신 8주 째를 맞았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코넬 대학에서의 인공자궁 실험과 함께 다시 한번 생명윤리 담론을 뜨겁게 달구어 놓는 사건이었다.

염불보다는 젯밥에만 마음 있어

복제양 돌리 탄생이후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각종 생명과학 관련 핫뉴스와 우려의 반응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우리들에게, 인간의 존엄성 운운하는 생명윤리 담론쯤이야 무감각하게 뻔히 예정된 식상한 반응 따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아니, 오히려 전세계의 (아이를 갖기 원하는) 불임부부들 혹은 동성애 부부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던져준 뉴스였을 가능성도 있다. 안티노리 박사는 이미 몇 년 전, 증여받은 난자를 통해 62세 할머니를 임신하게 해 준 생명공학, 그 희망의 전도사 아니던가!

그러나 복제된 인간배아를 임신한 첫 사례로 과학사에 기록될, 이 뉴스를 접하는 마음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만일 이런 우울함이 각종 SF나 X 파일 시리즈에서나 있을 일에 지레 겁을 먹은 반응처럼 여겨지거들랑, ‘희망의 생명공학’과 ‘형이상학적 세계의 생명윤리’가 치르는 대리전은 잠시 접어두고, 눈앞에 놓인 현실부터 이야기해보자.

무엇보다도 현재의 과학 수준은 기술적으로 안전한 복제 방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즉 복제 배아를 착상시켜 임신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아기가 기형으로 태어나거나 사산될 가능성이 지극히 크다는 점은 포유류 복제를 통해 이미 입증된 일이며, 생명 과학 전문가들조차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저 너머에 있을 법한 인간의 존엄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생명과학 연구가 안전의 문제를 보장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과학적으로도 무책임한 일이다.

한편, 아직은 복제된 인간 배아의 임신을 성공시킬 만큼 생명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티노리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학술지가 아닌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데다가 연구와 관련된 구체적 내용을 밝히는 것도 거부하고 있어, 연구결과 자체가 허위라는 의혹을 크게 사고 있다.

그렇다면, 안전성도 검증되지 않은 실험이 날조의 혐의를 받으면서까지 몇몇 인간복제 신봉자들에 의해 감행되고 발표되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공유’가 과학자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연구의 규칙이었어도, 대중들의 과학이해가 프랑켄슈타인의 그것과 흡사해졌을까.

몇 년 전 경희대 연구팀이 4세포기 인간배아 복제에 성공했(으나 윤리적 문제 때문에 멈추었)다는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었다. 발표 내용이 학문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뒷 얘기야 어떻든 간에, 경희 의료원이 불임시술의 메카로 자리잡은 데에는 그 때의 체외수정 실험 ‘성공’과 언론보도가 크게 한 몫 했을 것이다. 연구/실험 결과가 발표되면, 한동안 관련 생명공학 기업의 주식은 오르기 마련이다. 물론 대부분의 ‘발표’들이 언론을 타고 있을 동안은 조금씩은 뻥이 섞이고, 또 얼마만큼씩은 호들갑으로 부풀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충격이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현재 수준에서 대중과 동료과학자들이 경악을 하건 말건, 인간복제에 열을 올리는 과학자들과 생명공학 관련 기업들의 관심은 ‘돈’이지 ‘생명’이 아니다.

물론, 줄기세포를 얻어내고 인간 배아를 복제하는 연구는 ‘불치병이 없는 인류’를 만들려고 하는 고귀한 꿈인 지도 모르겠다. 생명공학적으로 안전한 복제 기술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복제기술의 실용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연구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열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한 과학

그렇다면, 만에 하나 생명 복제 기술이 실용화되었을 때라고 하더라도 그 열매는 누가 가지는 것인가. 노바티스사의 글리벡이 말해주듯, 지불능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혜택은 무의미하지 않은가.

연금술에 열광하던 중세가 끝나고도 오래도록, 영구기관을 발명하는 것은 많은 이들의 꿈이었다. 그래서인지 과학사를 조금만 더 들춰보면, 적어도 에너지보존법칙에 따르면 영구기관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영구기관을 발명했다는 거짓 선전으로 적잖은 이득을 챙겼던 사람들도 종종 등장한다. 인간복제도 그렇게 차라리 이루어질 수 없다면 다행스러울 꿈이다. 안티노리의 연구가 차라리 날조라면 안도해야 할 노릇이다. 이도 저도 아닌 복잡한 심경이라면, 바로 지금이야말로 ‘한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한 과학’을 꿈꾸고 그 꿈을 모두의 현실로 만들어야할 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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