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호 [시사쟁점] 성매매근절과 공창제, 어떻게 볼 것인가
2003-04-04 15:58 | VIEW : 28
 
171호 [시사쟁점] 성매매근절과 공창제, 어떻게 볼 것인가
공창제는 현대판 노예제도일 뿐이다

김미령 / 성매매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사무국장

공창제는 성매매를 합법화시켜 여성의 성을 통제한다. 현실적으로 범죄행위가 만연해있고, 그 안에서 침해되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다해도, 가장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을 깨트리는, 여성의 몸을 성의 도구로 삼아 사고 팖으로써 여성의 성을 통제하는 일을 합법화할 수는 없다. 공창제는 성매매 근절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성매매를 장려 확산하게 될 것이다. 공창제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합법화하지 않고서도 그 어떤 경우라도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인권이지, 공창이 되어야만 보호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권이 아니라 공창이 될 권리에 불과하다.

성매매된 여성 스스로가 공창이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매매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여성들은 내게 “공창제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혹은 그들의 가족인 여성에게 사흘만 성매매를 경험하게 한 다음, 그것이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 판단된다면 그 다음에 공창제에 관해서 논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노예이기를 거부하는 노예들

노예 자신이 노예제도가 지속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누가 공창제를 통해서 성적 노예제도를 존속시키고자 하는가. 성적 서비스 수요자와 성매매를 통해서 부당한 이익을 얻는 알선업자 매개 고리는 물론이고, 행정 편의를 위해 공창을 설치하고 관리와 눈가림 단속을 통해 전시행정을 하고자 하는 사람일 것이다.

자신들은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현실론을 펴며 성매매 현장여성들의 인권보호를 위해서 공창제를 주장한다면, 공창으로 낙인찍은 후 관리 당하며 얻어지는 인권이 얼마나 제한된 자유인지 돌아보며, 범죄를 합법화하지 않고도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수많은 대안들을 깊이 생각해 보자고 권하고 싶다.

일정지역 특정인에게 허가하고 관리한다면 불법적인 성매매는 더욱 확산되어 더 많은 여성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일정지역을 합법화하여 관리하면서 나머지 지역의 성매매는 어떻게 막을 것이며, 2백만에 가깝다는 성매매 여성 중 누구를 공창으로 허가해주고, 누구를 막을 수 있을지 마련이 없다.

오히려 합법화된 성매매 시장은 부수적으로 외국인들의 인신매매, 조직폭력, 마약거래, 자금의 뒷거래 등의 온상이 되기 쉽다. 독일이나 호주 빅토리아 주의 예를 보더라도 합법화 이후에 성매매 현장여성들의 인권이 신장되었다는 증거를 찾아 볼 수 없고, 여성단체들은 합법화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보고서를 내고 있다.

‘인신매매 금지 및 타인의 성매매 행위에 의한 착취 금지에 관한 국제협약’ 등 여러 국제 협약이나 의정서들은 본인이 합의를 했다하더라도, 또 불법이든 합법이든 인간은 성매매를 목적으로 관리 감독될 수 없으며,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인신매매 성매매에 의한 착취를 조사하고, 기소하며, 서로 협력하여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협약에 가입한 우리나라가 협약을 준수하려는 성실한 노력도 없이 문제의 본질을 저해하는 제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성매매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성매매범죄에 대한 규정 보완 및 준수, 성매매된 피해자 여성의 비범죄화 및 보호, 성을 사는 자에 대한 교육과 보호처분, 아동 청소년 외국인 장애인 등의 성적 인신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대한 국가의 책임확대 등의 철저한 조치를 취한다면 공창제를 만들지 않고서도 막막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

노예제도가 극에 달했을 때 아무도 그것이 없어질 것이라 상상도 못했지만 시대를 앞서가던 양심세력들은 수 없는 희생을 치르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였으며, 지금은 아무도 노예제도의 필요성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신념과 꾸준한 노력이 이 일을 이루어 낼 것이다.

어설픈 인정보다는 현실 직시가 필요

우리는 성매매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현실을 인정하고,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목적을 벗어난 수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은 성매매된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이다. 임시방편의 합법화나 관리 규제는 문제를 미봉하고 오히려 곪아터지게 할 수 있다. 이제는 성매매 문제를 좀더 솔직하게 대면하고 진지한 씨름을 시작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긴 호흡으로 정도를 걸으며, 한 단계씩 나아가야 한다. 크거나 작거나, 민이거나 관이거나, 감당할 수 있는 만큼씩 성매매된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며, 자립을 지원하는 일로부터 그 일을 시작할 수 있고, 꾸준히 펼쳐나가야 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분노와 슬픔이 그대로 방치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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