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호 [현장의 숨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003-04-04 16:19 | VIEW : 37
 
175호 [현장의 숨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실을 밝히는 일,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최남도 편집위원
marksman@freechal.com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폭력적 정권의 공권력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발족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이하 의문사위)의 활동이 이달 16일로 기한이 만료돼 실질적인 조사활동이 끝났다. 접수된 82건의 사건 중 30건의 사건이 조사불능 상태로 결정이 난 상태인데다가 국회의원님들의 지지부진하신 국정운영 덕에 의문사법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절반 가까운 사건이 조사불능이라는 딱지를 달게 된 것은 의문사위의 권한이 조사에 한정돼 있고,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 등의 일반적인 수사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의문사위 조사 1과 신명철 팀장의 설명이다. 따라서 행정기관과 정보기관의 협조는 필수적이었으나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일반적인 행정기관과 경찰의 경우는 협조가 잘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과 기무사의 경우는 실제조사를 거부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료의 유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조사를 거부한 기관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 정도였습니다.”

의문사위의 활동 가운데는 본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활동도 있다. 89년 본교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이었던 이내창 열사 사건도 의문사위에서 조사를 실시했다. 이내창 열사는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학교로 찾아온 신원미상의 2명의 인물을 만난 뒤 실종돼 전남 거문도 유림해수욕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검찰과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실족·익사로 결론지었으나 유족과 학생들은 수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을 해왔다.

“조사원들이 거문도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섬의 거의 모든 주민을 조사했고, 섬을 떠나 타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 만나서 조사했습니다. 사고 지점에서의 과학적인 조사는 물론이고 수중실험까지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타살임을 입증했습니다. 사고·실족사했다는 경찰의 과거 수사 결과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문제는 타살의 주체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의 자료협조 거부로 인해 조사는 별 진전없이 마무리 됐습니다. 결국 조사가 진전되지 못하고 마무리됐습니다.
이 사건은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정보기관의 조사 결과나 정보 등에 대한 기록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진상규명은 불가능하다는 의문사위의 한계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신명철 팀장은 앞으로 의문사위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권한강화가 전제된 기간연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문사위의 활동에 대해 실패를 인정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의문사위의 활동은 과거청산이라는 과제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문사위의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위원회는 그 초석이 되는 것이지요. 실패를 통해 모델을 제시했다는 것이 아마 의문사위의 의미일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민주화와 관련된 의문사를 포함하여 군의문사나 이외의 다양한 의문사로 조사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유족들은 국회 앞에서 기간연장, 권한강화, 특검제 도입을 요구하면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조사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는 신명철 팀장의 모습을 통해 의문사위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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