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호[해외 학술동향] 사회학자 부르디외에 대한 출판 흐름과 사후 평가 작업
2003-04-05 12:00 | VIEW : 7
 

174호[해외 학술동향]

사회학자 부르디외에 대한 출판 흐름과 사후 평가 작업

유서연 / 파리4대학 철학과 박사과정
 

지금 프랑스에서는 지난 1월 23일 파리에서 71세를 일기로 타계한 부르디외(P. Bourdieu)에 대한 사후 출판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쉽게 분노하는 천재에 대한 축복>이 철학자 미셀 옹프레의 편집으로 갈릴레이 출판사에서, <내가 사회를 참을 수 있는 것은 내가 그것에 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제목으로 앙트완 스피르와의 인터뷰가 실린 소책자가 로브 출판사에서, <정치적 개입1961~2001>이 아곤 출판사에서 올해 새로이 출간됐다.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쉐이유 출판사에서 출간된 <독신남성들의 무도회, 베른 지방 농촌사회의 위기>로 부르디외의 논문 3편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시골 마을의 작은 무도회의 뒷편에서 청춘남녀의 댄스를 묵묵히 바라보는 늙은 독신남들의 사회적 불행이 농촌사회 전반의 위기를 단적으로 함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최근 발행된 Sciences Humaines 특집호는 프랑스 사회학계 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되었던 부르디외에 대한 이론적 성찰을 총결산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쟁점화되고 있는 부분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 개념에 대한 비판적 수용 작업일 것이다. 아비투스는 불평등한 구조로 위계지워진 상징질서 체계를 가정교육이나 사회적 교육을 통해 내면화시킨 결과 한 개인이 얻게되는 지속적인 사고, 인지, 판단의 성향체계이다. 부르디외는 한 사회적 행위자의 일상적 활동이 이 성향의 체계에 어떻게 구속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현대 사회가 양산해내는 개인의 자유와 성공이라는 신화에 일침을 가한 바 있다. 문제는 그가 이 개념틀을 통해 개인과 집단, 정신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관계를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도식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베르나르 라이히와 장 클로드 코프만은 한 개인을 둘러싼 사회세계 자체가 복합적인 아비투스들의 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중 어느 한 성향의 체계가 지배적인 방식으로 한 개인에게 체화되는가를 결정짓기 보다는 그러한 성향들의 복수성과 지속가능성 자체를 문제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라이히는 오늘날 프랑스의 가족 상황은 결코 한 개인을 일관된 방향으로 사회화시키는 공간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 성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세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가정은 복수적 성향의 아비투스들이 맞물려지는 사회화 공간인 셈이며 그 속에서 자란 아이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 따라, 이용 가능한 여러 가지 사고와 행위 도식들을 체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그의 이론적, 실천적 유산에 좀 더 귀를 귀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알랭 뚜렌느는 부르디외를 민중의 사회학자라고 부르면서, 특히 그의 상징적 자본 개념은 오늘날 세계 전체가 어떻게 시장화 되는지를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이론적 열쇠임을 강조한다. 부르디외를 말하는 것, 그것은 결국 그에 대한 어떤 입장을 나타내도록 끊임없이 부추긴다. 부르디외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부르디외로부터 사회학은 여전히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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