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호[책상 위의 나침반] 망원경에서 철학책으로 전환된 나의 패러다임
 
 

177호[책상 위의 나침반]

망원경에서 철학책으로 전환된 나의 패러다임

김유경 / 과학학과 석사과정
 

나는 학부에서 우주과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과학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른바 ‘전공을 바꾼’ 경우이다. 순수이학전공이었던 내가 하필 인문학의 최전선에 있는 철학을 전공하게 된 걸까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딱히 계기라고 할 만한 것도 없어서 어째서 그랬을까 싶을 정도이다. 굳이 찾아내자니 사소한 동인 몇 가지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내 삶은 커다란 계기보단 사소한 동인들에서 만들어져 왔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철학이 주목받는 것은 하나의 대안 학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이공학의 괴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부 때에도 어렴풋이 그런 것들을 느꼈었고, 늘 이 문제에 관심을 두었었다. 그 때 읽었던 과학철학 관련 책 중 하나가 요즘은 교양서로 취급받는 토마스 쿤(Thomas S. Kuhn)의 <과학 혁명의 구조>이다. ‘패러다임’이란 말을 요즘엔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으니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책의 내용이 굉장히 혁명적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과학사에서 차고 이울어간 많은 이론들 중 어느 한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나을 바 없다는 이 이야기는 혁신적이지만 꽤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든 학문은 동등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었고, 그것을 핑계삼아 나는 다른 분야의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알고 싶어했다. 결국 나는, 과학학과에 대학원 원서를 내는 황당한 일을 벌였다.

애초의 전공분야 대학원에 갔다면 지금처럼 기초도 없으면서 전공서적을 해석하느라 단어 하나 때문에 머리를 쥐어 싸매지는 않았을 거다. 망원경에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고민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아주 즐거워하고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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