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호 [학술기획] 과학읽기 세상보기- ②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사회학
2003-04-30 12:13 | VIEW : 52
 
최근 과학철학이 학계의 학제적 분위기를 반영하며 다양한 지평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과학은 세상을 독해하는 준거의 하나였다. 과학으로 오늘 읽기, 동시에 오늘의 과학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기가 이번 학술기획에서 의도하는 바이다.
<편집자주>

글 싣는 차례
① 현대 과학철학의 흐름과 주요 논쟁
②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사회학
③ 탈근대의 키워드, 반과학주의
④ 현대과학과 동양사상의 대화

문화충격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던 상식이 파괴됨으로 해서 오는 심리적 혼란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흔히 역사적·문화적 경험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생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우주를 정교하게 짜여진 거대한 기계로 이해하는 경우에는 그 중 일부를 조작하고 이용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그 질서에 순응하는 것만이 유일한 도덕적 생존방식이다.

 

이처럼 삶의 방식은 세상에 대한 앎의 방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문화충격이란 서로 다른 앎과 삶의 방식이 부딪치는 곳에서 생긴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때로는 참혹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인종청소라는 끔찍한 살상의 명분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물리적 폭력은, 특별한 앎과 삶의 체계를 가장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식론적 폭력’에서 출발한다.

과학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앎의 체계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그 보편과 합리를 구분하는 잣대가 무엇인지를 검토하지 않는다면 그 주장의 정당성은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이건 마치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특정 국가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패권주의 국가의 정치적 폭력과 다를 바가 없다. 검증되지 않은 보편과 합리의 잣대로 다른 문화권의 앎과 삶을 재단하는 행위는, 소위 과학적 지식만을 유일한 앎의 체계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근거한 삶의 방식만을 옳은 것으로 강요하는 ‘문화적 폭력’이지 않은가. 따라서 과학이 자신에게 씌워진 인식론적·문화적 폭력의 혐의를 벗으려면 자신이 내세우는 보편과 합리라는 가치의 논리적·도덕적·문화적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근세 이후 서양의 해부학이 동아시아에 전해질 즈음, 동양의 의학자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인체를, 우주의 오행과 상응하는 오장육부로 파악하는 수 천년에 걸친 앎의 체계가, 단순한 구조와 형태의 집합으로 보는 앎의 체계와 충돌한 결과이다. 지금은 그 둘을 배타적으로 보기보다 상보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도 되었지만, 당시에는 두 체계가 전혀 공약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일부 의학자들은 애초부터 동양인과 서양인의 인체구조가 다르다는 주장을 펴기까지 했으며, 동·서 의학의 공존가능성에 관해서는 아직까지도 그 논란이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과학은 문화·도덕적 정당성 가져야

보편성과 합리성의 기준에서 보면 동양의학은 마땅히 도태되었어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20세기말에 이르러 동양의학의 영향력이 훨씬 더 강화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전제되었던 과학(서양의학)의 보편성 주장이 심각하게 도전 받고 있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한편으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앎의 체계를 받아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 천년에 걸쳐 몸 속에 아로새겨진 방식의 삶을 살아간다. 앎의 체계가 바로 삶의 방식으로 번역되지는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삶의 방식이 앎의 형식과 내용을 좌우하기도 한다. 앎과 삶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현상은 동양이 서양의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뿐 아니라, 서양의학 자체의 역사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주지하다시피 서양의학은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가 서양의학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것은, 질병치료에서 초자연적 힘을 배제하고 순수한 자연적 힘들의 인과관계로 건강과 질병을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로 주술이나 신탁에 의존하던 이전의 의학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합리적’ 의학체계였다. 그러나 당시의 합리성은 오늘날의 합리성과 여러 면에서 다른 것이었다. 우선 그는 사람의 몸을 네 가지 체액으로 구성되는 기능적 단위로 파악한다. 인체를 하나의 기능적 단위로 파악하는 한, 인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들의 형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고대의학과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유럽의 중세 의학에서는 해부학의 발달이 거의 없었으며, 있었다 하더라도 신체 각 부위를 별자리에 연관시키는 등 지극히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뿐이었다. 당시 의학의 합리성은, 인체의 형태나 구조를 중심으로 질병을 발견하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체의 총체적 기능을 중심에 두고 기후와 지리적 조건 그리고 천체와의 ‘연관’을 파악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지 자연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당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앎의 체계라 할 수 있다.

앎의 체계는 삶의 현장에 근거해야

이러한 ‘관계적 합리성’은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구조적 합리성’으로 대체되어간다. 데카르트 이후로 물질의 세계와 영혼의 세계가 뚜렷이 구분되자, 영혼이 빠져나간 인체는 단순한 기계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이제 인체는 분해와 조립이 가능한 하나의 기계적 실체로 상정된다. 분해조립을 할 수 있으려면 각 부분의 구조와 형태를 철저히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해부학의 발달은 그러한 필요의 자연스런 결과였다. 이제 인체는 구조와 형태로 개념화되고 인체 각 부분의 형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많은 해부도가 그려진다.

그러나 당시에 그려진 해부도를 보면 오늘날의 그것과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이 드러난다.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진 시신은 해부대에 누워있는 죽어있는 물질의 덩어리가 아니라 마치 살아서 생동하는 운동선수처럼 그려진다. 모든 살점이 떨어져나간 해골마저도 사색에 잠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이를 가진 임신부의 자궁은 열매를 맺은 꽃봉오리의 모양으로 그려서 생산의 의미를 표현하며, 오줌을 걸러내는 방광을 그릴 때는 벽면에 하수가 흘러가는 작은 도랑을 그려 넣어서 소변이 걸러지는 기능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그들은 눈앞에 죽어있는 시신을 해부하면서도 삶이 빠져나간 죽어있는 몸을 상상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근세 이후의 해부학에서는 삶의 풍부한 맥락과 발랄함이 사라지고 순수한 물질적 덩어리로 이루어진 형태만이 남게 되었다. 관찰과 분석의 단위도 기관과 조직, 세포로 점차 좁아지더니 이제는 드디어 세포의 핵 속에 들어있는 염색체, 그 중에서도 핵산이라는 물질(DNA)에 생명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고 믿게 되었으며, 얼마 전에는 그 정보가 모두 해독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생명의 신비가 모두 풀렸는가. 대답은 단연코 ‘아니요’다. 누구보다도 유전정보 해독에 매달려온 연구자들이 이 사실을 더 잘 안다. 이들은,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은 유전체구조의 대강을 파악한 것에 불과할 뿐, 정작 이들의 기능과 작용을 밝히려면 지금까지 해 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 염색체의 DNA를 구성하는 30억쌍의 염기 서열을 모두 알게 되었지만, 그러한 앎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는 거의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구조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그 구조가 위치한 맥락과 관계를 무시해온 결과이다. 이제 21세기의 의학은 인식과 방법의 폭력에서 벗어나 생생한 삶의 발랄한 현장 위에 다시 세워져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근거 없는 무병장수의 환상을 확산시킬 것이 아니라, 역사로 돌아가 앎과 삶이 전면적으로 결합했던 시기를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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