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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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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호 [학술기획] 과학읽기 세상보기- ③ 탈근대의 키워드, 반과학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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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호]
승인 2006.02.26  15: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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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호 [학술기획] 과학읽기 세상보기- ③ 탈근대의 키워드, 반과학주의
2003-05-14 04:21 | VIEW : 57
 

185호 [학술기획] 과학읽기 세상보기- ③ 탈근대의 키워드, 반과학주의

극단적 과학주의의 교정자는 “지성적” 반과학주의

이상욱 / 한양대 철학과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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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학철학이 학계의 학제적 분위기를 반영하며 다양한 지평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과학은 세상을 독해하는 준거의 하나였다. 과학으로 오늘 읽기, 동시에 오늘의 과학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기가 이번 학술기획에서 의도하는 바이다.
<편집자주>

글 싣는 차례
① 현대 과학철학의 흐름과 주요 논쟁
②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사회학
③ 탈근대의 키워드, 반과학주의
④ 현대과학과 동양사상의 대화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에게 뉴튼, 로크, 베이컨으로 대표되는 근대과학의 정신은 인류에게 악마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근대과학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대신할 신비주의적인 ‘영감의 물리학(visionary physics)’을 제시하려 했다.


반과학주의는 블레이크 류의 현대과학의 자연 탐구방법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감에서부터 표준적인 자연과학적 지식과 양립하기 어려운 초자연적 힘의 존재를 믿는 행위, 그리고 현대 자연과학에서 유래했다고 여겨지는 대량 살상무기나 환경오염과 같은 여러 파괴적 결과들에 대한 환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근원으로부터 나타날 수 있다.

이 글에서 필자가 주로 살펴보려 하는 주제는 현대 과학이 자연과 인간사이의 ‘공감적 이해(emphatic understanding)’를 잃어버리게 했다는 탈이성적 생각이나 현대과학의 효용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소위 대안적 과학을 추구하려는 다소 무모한 움직임의 일환이 아니다. 그보다는 근대이후 발전한 자연과학의 연구방법론에 회의적 시각을 던지면서 그 연구가 밝혀낸 세계에 대한 존재론적 그림이 근본적인 수준에서 잘못되었거나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으로서의 반과학주의이다.

반과학주의도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학사학자 제랄드 홀튼(Gerald Holton)에 따르면 그리스 시기의 과학에서 자연현상을 순전히 ‘자연적’ 원인으로만 설명하려고 노력한 자연철학이 호머시기에 발흥한 이후, 페리클레스 집권시기에는 다시 ‘초자연적인’ 현상을 강조하고 마법을 이용한 치료가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반계몽의 시기가 찾아왔다. 이처럼 반과학주의는 많은 경우 우리의 세계에 ‘초자연적인’ 원인이나 현상이 존재함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특징을 갖는다.

경험적 결론의 비자명성과 반과학주의

그렇다면 이런 ‘초자연적인’ 원인이란 무엇일까. 이 점에 대해 우리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가령 초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능력이 일상적으로 관찰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특이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실재로 존재하는 진정한 능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적’과 ‘초자연적’의 대조는 어떤 현상이 상호주관적으로 경험적 확인이 가능한가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즉, 초자연적인 현상은 특정한 사람과 특정한 조건을 만족할 때만 나타날 수 있는 반면, 자연적 현상은 명확히 규정될 수 있는 조건이 만족될 때에는 연구자의 개인적 특성에 무관하게 항상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도 조심스럽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현대과학에 대한 소박한 생각과는 달리, 현대 자연과학의 경험적 결론들이 모든 사람에게 ‘자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성적 반과학주의는 이를 통해 현대과학과 유사과학 사이의 인식론적 동등성을 도출해내고는 한다. 그러나 물론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우선 관련된 인식적 행위가 인과적으로 효율적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현대과학 지식은 반과학주의자들이 제시하는 ‘대안적’ 자연이해에 기반한 지식보다 경험적으로 더 믿을만한 결과를 제공한다. 게다가 현대과학을 올바로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훈련은 대안적 과학의 경우와는 달리 학습자의 개인적 특성에 상당히 무관하게 표준화될 수 있다.

반과학주의 지지자들은 종종 현대과학이 상호주관적으로 적용가능하다는 점을 과학적 방법론의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계에 상호주관적 방법론으로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중요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나면, 현대과학의 상호주관성은 장점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영국경험주의 연구전통의 시조 베이컨(Francis Bacon)이 그 당시 연금술사들의 비밀주의적 작업태도를 비판하면서 분명히 밝혔듯이 과학정신의 핵심은 연구결과를 상호주관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평가하고 공유하려는 태도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반과학주의가 등장하고 상당한 세를 얻게 된 비본질적인 이유와 만나게 된다. 즉, 반과학주의는 ‘과학주의(scientism)’라고 부를 수 있는 과학에 대한 소박하고 잘못된 견해에 대한 반작용에서 큰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주의는 과학이 올바른 방법론만 제대로 적용하면 경험적 증거에서 세계에 대한 절대적 진리를 얻어낼 수 있으며, 과학연구는 인류가 당면한 모든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학은 과학주의가 묘사하는 것처럼 완벽하지도, 반과학주의가 주장하듯이 세계에 대한 다른 주장과 인식론적으로 구별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근대과학은 무엇보다도 근대 계몽주의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계몽정신은 과학주의적 세계관과 여러 면에서 상통한다.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거부와 교회와 국가의 권력으로 상징되는 권위에 의한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거부, 그리고 본질적으로 개인의 이성적 판단에 의해 세계가 이해가능하고 개선가능하다는 계몽정신은 세계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낙관론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낙관론은 꽁디약(Etienne T. de Condillac)의 자연탐구에 적합한 ‘투명한’ 언어탐구에 대한 열망이나 백과전서파의 지식통합에의 욕구 등에 잘 나타난다.

낭만적 반과학주의는 오독의 반작용

현대에 와서 확실해진 점은 근대의 계몽이성의 낙관적 약속의 많은 부분이 실현하기 매우 어려운 것들이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자연과학적 지식을 통해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사회의 위험요인이 중첩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체르노빌 사태와 같은 예기치 못했던 상황으로 인해 무너지게 되었다. ‘위험사회’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이런 근대적 낙관론을 보다 조심스럽게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반영한다. 이에 더해 과학적 사고방식이나 계몽적 사고방식의 한계나 문제점을 진단하는 여러 논점들이 포스트모더니즘 계열로 분류되는 작가들에 의해 쏟아졌고, 과학은 더 이상 존경받지 못하는,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이며 종종 여성억압적인 세계인식방법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는 매우 성급한 결론이다. 이 점은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적 견해가 과학분석에 적용될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2002)을 저술한 현대 환경주의의 시조로 간주되는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견해를 예로 들어보자. 카슨이 부각시킨 점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여러 요인들이 실제로는 통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특히 국소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사용했던 다양한 화합물이 실제로는 생태계의 연계고리를 따라서 거시적 규모의 파국을 몰고 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카슨이 수행했던 것은 지극히 표준적인 분석화학의 방법이었고 엄밀한 생태학적 분석이었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이 가져온 위험사회적 요인을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도 역시 상호주관적이고 경험적인 연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물론 이러한 인식은 과학기술의 문제는 과학기술만으로 해결가능하다는 과학주의를 함축하지는 않는다. 카슨도 지적하듯이 분석적 과학방법론은 시스템적 사고와 사회윤리적 고려와 결합될 필요가 있다. 교훈은 분명하다. 탈근대 논의의 의의는 근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지 근대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과학주의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서 반드시 반과학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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