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호 [사회논쟁] 보건의료노조를 통해 본 산별노조 전망
2004-11-03 07:52 | VIEW : 101
 



[사회논쟁] 보건의료노조를 통해 본 산별노조 전망



글 싣는 차례      
① 산별협약 10장 2조,  노동운동내 격차 줄이는 산소조항(이주호 /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국장)
② 계급적 산별이라면 10장 2조에 대한  반성적 논의가 필요하다(백일자 / 노동자의 힘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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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번 호에서는 우리나라 산별노조의 문제와 전망을 올해 첫 산별협약과 산별교섭을 치른 보건의료노조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이번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중 쟁점이 되는 10장2조에 대해서 노동자의 힘과 보건의료노조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어, 이 두 단체의 상반된 입장을 통해 이후 산별체제의 방향과 전망을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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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협약 10장 2조,  노동운동내 격차 줄이는 산소조항


 


이주호 /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국장

올해 첫 산별교섭, 산별총파업과 더불어 서울대병원지부의 산별협약 10장 2조(우선 적용)에 대한 문제제기로 병원 산별교섭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에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1만 조합원이 14일간의 총파업 투쟁으로 첫 산별협약을 쟁취했다. 물론 합의 내용 중 일부 미흡한 조항이 있지만 결과를 평가하기 이전에 4만이 함께 한 진행과정의 평가가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그간 금속노조와 금융노조가 산별교섭을 진행해왔지만 보건의료노조는 98년 산별노조를 만들고도 사측의 거부로 산별교섭은 못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산별교섭을 쟁취하고 산별협약까지 체결하는 가슴 벅찬 성과를 얻었다. 애초 목표를 몇 단계를 뛰어 넘은 산별교섭의 진전은 ‘우리나라에서 과연 산별교섭이 가능할까’라는 세간의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켰다. 내용면에서도 병원계를 대표하는 대학병원 전원참가, 산업별 의제와 주 5일제를 포함한 주요 근로조건이 백여개 병원의 규모와 특성의 차이를 넘어 단일한 합의안을 만들면서, 이후 산별노조가 연대와 평등으로 가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이번 산별협약 내용 중에는 산별기본협약, 의료산업발전과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 특별위원회 구성, 산업별 최저임금제 도입, 보건연대기금조성, 의료기관 주 5일제 시행원칙과 일자리 창출 합의 등 그동안 기업별교섭에서 불가능했던 노조의 산업정책 개입과 비정규직, 미조직 문제 해결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

병원별 차이를 넘어 평등과 연대로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10장 2조가 지부 단위 자율교섭을 막은 독소조항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일부 지부를 제외하고는 똑같은 요구를 가지고 똑같이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을 했는데 대다수 지부는 그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일부 조항에 대해 통일기준 우선적용을 추구하는 10장 2조는 ‘독소 조항’이 아니라 이후 산별교섭의 취지를 잘 살려나가기 위한 ‘산소 조항’이다. 일부 주장처럼 산별교섭을 최저기준으로 하고 나머지를 지부 교섭으로 다 열어둔다면 결국 영국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산별교섭이 분권화되고, 기업별교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업별노조와 기업별교섭에서 이제 막 산별로 발돋움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어디에다 방점을 두고 이 문제를 바라봐야 될지 고민해야 한다. 10장 2조를 비판하며 최저기준만을 강조하는 것은 이제 막 진입한 산별교섭 시대를 뒤로 되돌리려는 기업별 의식의 발로이자 대병원 중심의 사고이다.
병원별 근로조건의 차이로 인해 90%이상은 여전히 현장지부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고, 다만 올해는 주 5일제를 시행하는 해인만큼 이를 둘러싼 몇 개 조항에 국한해서 산별 합의가 우선 적용되도록 한 것이다.
10장 2조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산별협약이 최소기준이냐 통일기준이냐는 점이다. 이 논쟁은 나아가 산별협약의 틀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노동운동내부의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를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가, 노동운동의 기조와 노선을 어떻게 세워나갈 것인가와 연결되어진다. 따라서 이 문제는 내용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삭제할거냐 말꺼냐는 식으로 정치 쟁점화 되어선 안된다. 산별 합의가 내용적으로 일부 미흡하다는 것과 10장 2조 자체가 문제 있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이번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은 많은 이들에게 산별교섭의 미래와 노동운동의 참모습에 대해 한번쯤 되돌아보게 한다.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의 연관성, 산별 중앙과 현장의 역할분담이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롭게 정립되어야한다. 여기서 경계해야할 것은 ‘현장이냐, 중앙이냐’라는 선택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문제는 산별노조는 항상 현장을 기본으로 하되, 시대의 화두인 빈곤과 차별, 불평등 해소, 사회 안전망 구축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별 단결을 넘어 얼마나 사회 밖으로 연대하고 단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
현장으로 눈을 돌리되 그 현장은 ‘기업별 현장’이 아니라 ‘산업별 현장’이 되어야한다. 이제 노동운동은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산업별로, 사회 속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진보성은 사라지고 집단 이기주의라는 탐욕만 남는다. 10장 2조 논쟁이 우리나라 산별운동의 근본적인 방향 논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계급적 산별이라면 10장 2조에 대한  반성적 논의가 필요하다

 


 


백일자 / 노동자의 힘 편집국장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산별투쟁에서 산별·지부·대정부별 요구를 나누고, 교섭방침으로 ‘산별요구는 지부교섭에서 다루지 않는다’ 등으로 정했다. 애초에 지부별 쟁취하기 힘든 요구들을 산별총파업으로 힘있게 쟁취하는 것이 취지였으나, 7년 만에 성사된 소위 ‘역사적 산별합의’는 지부투쟁의 차단과 현장의 문제제기를 반조직적 행위로 만들어버렸다.
보건의료노조 산별합의안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항목을 살펴보면, 주 5일제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는 ‘신규직원과 재직직원의 차별적용’에 합의함으로 산별정신을 훼손했고,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이 핵심 문제인 간접고용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부정하는 합의를 했다.
또한 최저임금을 40%로 합의하여 정규직 임금의 50%를 요구하는 민주노총의 올해 최저임금제 투쟁에 찬물을 끼얹었으며, 노·사 공동관리를 전제로 한 보건연대기금은 ‘공동관리’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통제를 받아들였다.
특히 문제제기 된 10장 2조의 경우, 개악된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에 따라 단체협약을 개악시키려는 자본의 의도가 관철된 것이다. 10장 2조에 따라 지부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 우선하여 효력을 가지는 사항들은 연·월차유급휴가의 폐지·축소, 생리휴가 삭감 등으로 이는 개악된 근기법에 대한 합의뿐 아니라, 이후 단체협약 개악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상층중심의 관료화된 산별노조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산별노조 재편을 통해 제도화하려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가 관철되었다. 노조 상층을 ‘산별교섭, 사회적 교섭’이라는 형태로 묶어둠으로써 하부를 통제하는 양상은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삭감, 노조투쟁력 약화’ 등을 부르짖는 노무현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와 흐름을 같이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부 현장투쟁의 족쇄로 작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보건의료노조 내에는 특성과 조건이 뚜렷이 다른 다양한 병원사업장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평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상향 평준이냐, 하향 평준이냐’라는 것보다 기준협약을 어떤 내용으로 마련하느냐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10장 2조의 효력은 서울대병원에서 보여지듯이 교섭자체를 사측이 거부하는 빌미가 된다. 관건은 ‘산별공동 투쟁으로 어떻게 돌파하느냐’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산별교섭안은 최저기준을 합의하고, 적어도 지부의 투쟁으로 넘어설 수 있게 열어뒀어야 했다.

현장의 자발성에 기반한 산별협약이어야
서울대병원지부는 “본조가 10장 2조에 대해 내년 협약에서라도 삭제한다고 결의하지 않으면, 보건의료노조를 탈퇴하겠다”는 조건부 탈퇴를 조합원 89.9%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어떠한 형태의 노조든 실질적인 힘은 조합원에게 있으며, 투쟁에 대한 조합원들의 판단은 최우선 기준이 되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현장투쟁이 거세된 채 계급적 산별노조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노동조합의 민주주의가 산별에서 어떻게 적용될 것인갗라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준 서울대병원 지부의 결정은 정당하다.
보건의료노조가 7년 만에 산별교섭을 성사시키자마자, 그동안 우려했던 모든 문제가 쏟아진 것은 모순되게도 그동안 산별협약을 위한 조건(강도높은 중앙집권화)들이 일정하게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별협약의 필요조건이 성립되는 순간 협약에서 노동조합 안을 성사시킬 만한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산별협약의 위기를 맞게 된다.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위한 산별 투쟁이라면 10장 2조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보건의료노조는 이를 선택했고, 오히려 서울대병원지부장의 징계를 중앙위에 상정했다. 이는 투쟁동력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보건의료노조의 산별협약 10장 2조로 상징되는 문제는 보건의료노조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것은 교섭형태, 이중파업, 현장단위의 조직력, 투쟁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자본과 정권의 전략과도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타 연맹 역시 중앙집권화된 산별노조의 힘을 가지는 순간 어디서나 이러한 블랙코메디는 연출될 수 있다.
산별노조가 계급적 단결의 공식이 되기 위해서는 전체 민주노조 운동이 현재 발생한 10장 2조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제출하고, 치열하고 반성적인 논의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산별노조운동의 역사를 바로 잡는 길이다.


■10장 2조- “단, 제 9장(임금), 제3장(노동시간단축), 제1조(근로시간단축), 제5 조(연·월차 휴가 및 연차수당), 제 6조(생리휴가)는 지부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 우선하여 효력을 가지며, 동 협약 시행과 동시에 지부의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을 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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