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호 [사회기획] 국가정체성 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
2004-11-03 08:28 | VIEW : 100
 



[사회기획] 국가정체성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


 



글 싣는 차례      
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
② 가부장제, 국가주의의 부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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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본 기획은 최근 벌어지는 국가정체성논쟁을 국가와 개인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개인을 기반으로 한 국가가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지, 그 억압의 한 측면으로 가부장제가 사회내에서 어떻게 개인을 억압하는지 현안을 중심으로 바라본다. 이를 통해 국가주의가 팽배한 한국사회에서 개인을 근거로 성립되는 근대국가의 유의미성을 고찰하고 국가와 개인과의 관계를 정립하고자 한다. 국가의 존립근거는 개인으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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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최근 들어 ‘정체성’이란 말처럼 유행이 되고 있는 단어도 없는 듯하다. 특히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정체성 특히 국가정체성이 무엇이냐, 혹은 무엇이었냐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또 웃기고 자빠진 싸움들을 하고 있구나 생각을 하다 문득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정체성이 뭘까. 성정체성 할 때의 정체성, 개인의 사상 혹은 가치관 등을 얘기할 때의 정체성이 떠올랐다.
사실 국가정체성이란 말은 모호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남성이냐 여성이냐로 따지겠는가 아니면 진보냐 보수냐로 따지겠는가. 정체성이란 말은 그 개인이나 집단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변수들에 의해 오랜 기간 만들어져 온 것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을 한 노무현 대통령을 놓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라고 얘기하였다. 그럴 수 있겠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명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모든 시민에게서 나오며 특정집단이 아닌 시민들에 의해 주권이 행사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 폐지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발상인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자유민주주의’도 ‘시장경제’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라는 헌법에 명시된 정체성도 사라지게 되는가. 사실 박근혜 대표의 국가정체성 공세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한나라당의 당리당략에 의한 한판의 정치쇼다. 유신시절의 ‘국가제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도 ‘시장경제’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니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해치는 수구세력의 밥그릇을 지켜주는 그들만의 신앙일 뿐이다. ‘국가제일주의’의 망령을 국가정체성이란 그럴듯한 단어로 포장했을 뿐이다.
지금도 막걸리식 국가보안법에 의해 피해 받은 사람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한나라당의 이런 몰상식한 색깔공세는 한동안 한국사회를 토론의 도가니탕에 빠지게 했다. 무언가 변화가 예감되는 시기에 본능적으로 가지게 되는 반발심리라고 하기엔 우리 모두에게 각인된 뿌리 깊은 국가주의의 냄새가 구리다. 군부독재의 시절도 지났고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많이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한 국가주의는 사회 구석구석에서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병역거부 운동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들어온 말이 ‘지금까지 국가가 해준 게 얼만데 의무를 저버리고 권리만 주장하는갗라는 것이다.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민주주의가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군대,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제는 그 민주화의 속도가 유난히 더디고 군부독재의 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때문에 반공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의 뿌리가 깊고도 깊은 한국 사회에서 총을 들지 않겠다는 소수자들의 신념은 인정과 포용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멸시와 배척의 대상이었다. 지극히 후진적인 한국군대의 현실과 특권계층의 병역기피, 이로 인한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 등이 대체복무 입법을 어렵게 하는 현실적 이유라면 전쟁의 상처와 수십 년간의 군사독재의 경험에서 오는 군사주의, 국가주의의 내재화는 병역거부를 용납할 수 없는 근원적 이유이다. 따라서 병역거부는 ‘국갗안에 살고 있는 ‘개인’의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사건으로 기억될 만하다.
국가의 역할 자체가 그렇듯이 국가권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무엇이 아니다. 국가권력 혹은 법과 제도는 자유로운 개인들로 구성된 시민사회의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삶의 문제, 개인의 인권문제로부터 국가의 존립 근거가 형성되는 것이다. 오랜 기간 민중들의 투쟁 속에서 인권 개념은 아주 구체적이며 그 범위도 매우 확장되어 왔다. 지금도 인권 개념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종결되지 않은 역사적 발전 과정의 결과인 것이다.
국가는 때론 지나치게 시민사회의 영역에 깊숙이 개입해서 공동체를 획일적 잣대로 통치하려들었고 때론 지극히 방관자적으로 뒷짐지고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렸다. 오랜 기간 국가폭력 앞에 국민의 자율성과 존엄성은 박탈당했고  우리 스스로도 그?통치체제에 길들여져 갔다. 오로지 다수의 의견과 생각만이 정상적인 것으로 통했고 소수의 의견이나 행동은 무시되고 차별받았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국가주의, 지극히 군사화된 획일주의가 다시금 고개를 쳐들고 있다.
민(民)에 의해 굴러간다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이 표방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정체성이다. 민(民)에 의해 굴러가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민(民)이란 단어가 새롭게 조명받고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 민(民)을 사고하기 시작한 것도 정말 최근의 일이다. 이제 모든 것이 출발선에 서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을 고수하자는 코미디가 버젓이 정당 대표의 입에서 쏟아지는 세상이다.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 집단 혹은 국가의 이익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는 개인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들의 토론과 합의로 구성되는 공동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국가가 우선이냐 개인이 우선이냐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처럼 지독한 국가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사고하는 것은 유의미한 출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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