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호 [사회기획] 사회기획 투기자본 어떻게 볼 것인가
2004-12-05 01:17 | VIEW : 59
 
206호 [사회기획] 사회기획 투기자본 어떻게 볼 것인가

 


투기자본을 정당화하는 사회운동은 안된다


이공순 / 실업극복국민재단 정책실장

투기자본은 근본적으로 국가를 뛰어넘는, 국가의 제도적 통제나 제약 외부에 존재하려는 경향을 가지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투기자본은 고전 사회학의 국가/사회 혹은 공적/사적인 것의 대당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동시에 투기자본이 유효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개별 단위 국가의 제도적, 사회적 저항들을 해체시켜야만 한다. 전통적으로 이같은 투기자본의 전략은 국제적인 압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이 글에서는 한국사회 내부의 어떠한 사회적, 담론적 조건이 투기자본의 운동을 가능케했는지를 몇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서 ‘사회운동’으로 경제담론을 이끌어 온 경실련, 참여연대, 그리고 김정태 전국민은행장의 사례를 통해, 이들의 각기의 논리가 어떤 계층을 대변하고, 그 결과로서 어떤 조건들이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고자한다.

시장에서의 공정경쟁 강조

경실련은 한국에서의 첫 번째 시민운동단체로 꼽힌다. 처음 경실련의 발기인들은 종교, 노동, 재야, 민주화운동단체 등 다양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대중적으로 내세운 구호는 ‘경제민주화’와 ‘경제정의’였고 그 구체적인 대상으로서 재벌 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서 짧은 시간내에 대중적 영향력을 획득했다. 92년 대선을 거친 이후 경실련은 재벌해체론을 ‘소유와 경영의 분리’쪽으로 정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대신 전반적인 경제시스템에 있어서 재벌(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관계의 공정성이라는 목표에 더욱 충실하게 된다. 동시에 경실련의 구호가 ‘경제 민주화’ 보다는 ‘경제정의’쪽으로 보다 근접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를 통해서였다. 이같은 공정경쟁론은 김영삼 정권 당시 불어닥친 탈규제론과 맞물려, 시장 또는 시장질서의 자율성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냈다.
경실련은 한편에서는 관치와 규제에서 벗어난 ‘시장질서’를 옹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정부의 새로운 규제를 요구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재벌-중소자본가 사이의 게임의 규칙을 중소자본가의 입장에서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까지 경실련의 담론이 가진 영향력은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이었고,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을 중립적인, 또는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시민사회의 목소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참여연대는 경실련의 상층교섭과 보수성에 대한 대응으로서, 그리고 90년대 초반 이후 새롭게 변화한 문화적, 사회적 경험들 속에서 탄생했다. 참여연대가 목표로 한 참여와 연대의 대상은 그 이전까지 존재한 대중이나, 민중 혹은 계급의 의미가 아니라 개별화된 개인들, 시민사회에서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인간들, 즉 시민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탈계급적 소액주주 운동
참여연대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이른바 ‘소액주주운동’을 통해서였다. 경실련이 넓은 의미의 시장에서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면,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은 좁은 의미에서, 즉 소유권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의 권리의 개념을 확정하고자 한다. 따라서 소액주주 운동은 그 참여를 처음부터 배타적인 것으로 한정한다. 즉 주주이어야 하며, 자신이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한 권리 확보의 문제이다. 이것이 참여연대의 활동방식이 경실련과는 다른 법, 권리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접근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소액주주운동은 처음부터 참여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권리의 보편성을 전제로 했다. 여기에서의 목적은 ‘권리의 등가성’ 또는 ‘권리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로 한정되기 때문에, 그 권리가 사회적으로 어떠한 목적을 수행하는가에 대해서는 발언할 여지가 극히 제한된다. 즉, SK사태에서 보여주듯이, 기업이 누구에게 지배권이 넘어가는가는 부차적인 과제이며, 사실상 소액주주운동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왜냐하면, 유일한 기준은 누가 소액주주의 권리를 더 잘 보호해줄 것인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미시적인 권리 기준은 사회전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불협화음을 노출한다. 경실련의 딜레마가 보여주었듯이, 소액주주운동의 딜레마는 개인의 권리와 이익이 사회적 이익과 충돌했을 때, 또는 그런 것으로 사회에서 규정지을 때, 갖는 한계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액주주운동 이데올로기는 탈계급적, 탈국가적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소액주주운동은 법/권리 담론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름하고 뒷받침해줄 고도의 법기술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전이된다. 즉, 처음부터 배제적이었던 운동은 그 과정에서는 더욱 배타적이 되면, 대중으로부터 멀어진다. 경실련이 구 중소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했다면, 참여연대는 넓은 의미에서 신중산층, 전문가집단의 의식을 표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실련의 유산인 시장주의 성립과 참여연대의 ‘배타적 소유권’의 확립이 결합되었을 때, 한국적인 의미에서의 CEO 자본주의가 탄생한다. 그것이 곧 시장에서의 배타적 소유권의 확립이다. 이른바 ‘주주경영’ 또는 시장의 수호자로 불리우는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하 김정태)의 스타덤은 주목할만한 사건이다. 김정태의 업적은 ‘관치로부터의 독립, 주주이익 경영, 경영혁신’으로 요약된다. 한국에서 김정태의 위치는 분명히 하나의 신드롬이었다. 김정태라는 인물상이 가능했던 것은 시장만능주의와 배타적 소유권의 확립이라는 조건에서였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상 자유주의가 진보 또는 시민사회의 성과라는 이름으로 이미 사회내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한편으로는 시장의 영역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들에 대한 법적이고 제도적인 기초들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해왔다. 자유로운 자본의 유통을 위해, 한 사회내에서의 이데올로기, 혹은 담론 형성의 지형이 일정하게 이루어져 있어야 하며, 그것은 국가와 사회의 여러 영역을 포괄한다.
사회운동들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자본의 유통을 위한 조건들은 그 사회내에서의 특정 집단들의 이해관계, 세계관과 관련되어 있고, 결과적으로 투기자본의 힘에 저항할 수 있는 기초를 약화시키거나, 투기자본을 정당화하는 고리를 제공한다. 투기자본의 사회적 기초 혹은 투기자본의 사회적 전략은 한 사회 내부의 힘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적어도 투기자본의 일방적인 희생물로서 전락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 사회에서 누가, 어떤 담론을 생산해내고 있는지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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