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호 [사회기획] 연구노동자의 노동과 보육의 문제
2005-03-13 18:14 | VIEW : 35
 




[사회기획] 연구노동자의 노동과 보육의 문제



대학은 교수라는 안정적 직업의 연구자 뿐 아니라 생존을 위해 노동과
학문을 겸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현실을 지탱하는 연구자의 노동현장이기도 하다.
특히 무임금·저임금 연구노동자들은 결혼과 출산, 보육을 철저하게
가족과 시장에 의존함으로써 경제적·정신적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사회기획에서는 학내 연구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모성권의
공론화를 위한 초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학내 연구노동자를 위한 보육시설 필요

안현미 / 사회복지학과 박사 수료






하루는 아이들과의 전쟁으로 시작된다. 유치원 버스시간에 맞추기 위해 허둥대기를 일년 넘게 경험하다보니 ‘학교 가까이 살거나 학교 안에 보육시설이 있다면 좀 더 여유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일과 아이양육을 병행하는 부모라면 더욱 간절할 것이다. 필자는 대학원 연구공간에서 공부하면서 시간강사를 하고, 저녁이 되면 아이를 위해 일찍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기혼 연구자를 만나면 “아이는 누가 돌봐주나요.”가 인사의 시작이 되었다.


연구노동자의 모성권과 노동권

언젠가 TV를 통해 “선진국의 보육”이라는 주제로 프랑스 보육제도와 시설을 보도한 적이 있었다. 다양한 보육형태와 공보육제도 그리고 직장보육시설 등에 부러워하면서도 중앙대 학내 공간이 새롭게 확장되어 직장보육시설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갖기도 했다. 선진화를 추구하기 위한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라는 곳에서 연구환경의 질적개선이 최우선일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러한 희망은 메디컬센터 완공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한 낮의 봄 햇살처럼 가슴만 설레게 하면서 지나가버렸다.


이에 필자는 대학 내 소수자이지만 예비 연구자이면서 강의라는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연구노동자의 모성권과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상적으로 볼 때 시간강사는 6개월로 강의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보육시설확충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으나 교직원, 교수, 비정규 연구노동자 모두의 모성권과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직장보육시설 차원에서의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여성의 문제라고만 한정할 것이 아니며, 최소한 아이를 둔 부모 모두를 대상으로 하려는 정부 당국의 시각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21세기 사회적 이슈 중 가장 큰 사회문제는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비단 최근의 문제라기보다 과거 10여 년 전부터 예상했던 문제이고, 학계 또는 사회단체에서 논의가 있어왔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여전히 눈앞에 불똥이 떨어진 후에야 뜨겁다고 소리를 지르고 대안을 찾는 형국이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는 IMF 구제금융위기보다 더 큰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교육비의 문제인가 아니면 미비한 보육정책 때문인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여전히 육아가 가정의 책임이고, 특히 여성인 엄마의 책임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육아에 대한 보살핌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봉사로서 간주하는 사회인식, 즉 남성 중심의 가부장주의와 생산성만을 가치있는 것으로 치부하는 자본주의적 양식에 있다. 이러한 증거는 현 정부의 출산과 보육정책에서도 드러난다. 단순한 출산 장려책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는 출산수당, 잔여적 보육지원 등이 한 예이다.


양성 평등적인 보육의 사회화를 위하여

주 양육자가 여성이라면 여성이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산과 보육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정책이 이뤄져야한다. 양육자가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는지, 어떤 가족구성원의 특성을 갖는지, 즉 양육자의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요소를 고려한 보편적이면서도 다양성을 포괄할 수 있는 정책이 요구된다.


현재 여성부 이관 후 보육정책의 하나인 차등보육지원정책은 제도가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차상위계층을 포함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보육시설에 대한 정부지원 또한 전체 보육시설의 30%이내이다. 2002년 기준 보육시설은 민간 보육시설 58%, 놀이방 35%, 국공립 보육시설 6%, 직장 보육시설 1%의 비율로 보고되고 있다. 한편 2001년 기준 0-5세 취원율은 34.3%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등록을 못한 아이들이 많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데이터는 현 보육정책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큰 문제는 1991년 영유아보육법 제정 이후 정부의 보육정책이 보육시설확충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민간보육시설의 수를 늘리는데에만 집중하면서 공보육의 기틀을 형성하기에 어려운 구조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여성노동력에 대한 요구는 확대되고 있지만 여성의 노동과 가사가 양립가능한 양성평등적 지원정책은 지지부진한 것이 현실이다. 한 예로 직장보육시설의 법적 설치기준이 상시 여성노동자 300인 이상에서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으로 확대되었으나 법적 강제력을 띠지 않아, 고용주들의 인식 뿐 아니라 남성노동자의 양육공동책임에 대한 인식부족이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직장보육시설은 정부와 고용주의 사회적 책임 하에 이뤄져야하는 과제이다. 지역사회 내에서 여러 중소기업 또는 은행 등이 함께 투자하고 일정정도의 정부 지원 하에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는 뉴스보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동이 미래의 경제주역이기에 공보육의 합리적 근거가 요구된다고까지 주장하지 않더라도 ‘보육의 사회화’를 통한 아이의 양육은 전 국민의 책임이며 소홀히 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보육의 확대와 양육자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보육프로그램과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또한 직장보육시설과 지역보육시설의 의무화와 지원정책, 법적 강제력 등에 대한 정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예비연구자들과 연구노동자를 위한 학내 보육지원정책의 확대와 함께 대학의 선두로서 중앙대학교가 모범을 보이길 바란다. 행정당국이 외쳐대는 연구중심대학은 구호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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