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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6.11 목 16:51
기획예술
195호 [특별기획] 김남주 시인의 현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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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승인 2006.02.26  15: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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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특별기획] 김남주 시인의 현재성
2004-03-05 10:24 | VIEW : 176
 

195호 [특별기획] 김남주 시인의 현재성


살아있는 실천적 투사 김남주 시인

 


 

故 김남주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김남주평전>(강대석, 한얼미디어)이 출간됐다.

이를 계기로 다시금 김남주 시인의 실천적 삶과 정신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주 인 /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그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아픔이다. 아프고도 아픈 아픔이다.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투사의 삶을 따르지 못하고, 변절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 또한 그가 남긴 우리 시대의 아픔이고 고통이다.


79년 남조선민족해방준비위원회 전사로 15년의 징역 선고를 받고, 88년 특별 사면 그리고 94년 췌장암으로 젊은 피를 망월동 묘역에 묻힌 그의 짧은 시력(詩歷)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생명력을 지닌다. 그래서 그럴까. 그의 시편들은 한마디로 생동차고 곧다.


그가 써 내려간 시들은 가멸 찬 싸움의 도구로, 노동의 현장과 추모의 현장에서 살아 숨쉰다. 더 부연하여 무엇하랴만, 그의 시편들은 <길>, <자유>, <돌멩이 하나>, <죽창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등 민중가요로 겨울공화국의 현장에 울려 퍼진다. 뿐이겠는가, 어둡고 추운 그 현장에 울리는 그의 육성은 햇살처럼 따뜻하다.


실천적 투사 김남주는 수형 생활을 겪는 동안 당대의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로 시를 선택했다. 그가 선택한 “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노레)죽창이 되고자 했던 시들은 우유팩과 은박지 그리고 밑씻개용 황색 종이에 새겨져 감옥의 담을 넘었다. 그렇게 피워낸 4백5십여 편의 피의 꽃들은 <鎭魂歌>, <조국은 하나다>, <저 창살에 햇살이 1, 2>등을 통해 동토의 땅을 깨울 파도를 만들었다.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고, 이승연이 군 위안부 테마 동영상을 찍고, 수북히 쌓인 민생현안은 미루어지면서도 한·칠레 FTA 비준 동의 안이 네 번의 표결 끝에 통과되었다. 그 와중에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 박일수씨는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제 잇속을 챙기기 바쁘고, 속임수며 거짓이 그럴 듯이 포장되어 있는 이때, 김남주가 염원하던 ‘자유, 해방, 민족, 민중, 투쟁, 계급, 혁명’(「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은 어디에 있는가.


반외세의식, 광주항쟁, 분단극복의지 그리고 노동의 문제를 성난 함성처럼 토해냈던 그를, 나는 감히 남주라 부른다. 위대한 투사인 그를 남주라 부른 까닭은 실천적 투사의 삶을 산 그와 가까이 숨쉬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누구도 남주가 죽었다 말하지 말 것을 청한다. “죽어서도 먼 훗날 살아날지도 모른다”(「아무래도 내 시는」)는 남주의 전언처럼, 그는 지금도 이 자리에 굳건한 두 다리로 서서 카랑카랑한 목울대를 울리며 시대를 질타하고 있지 않은가. 자고로 “니기미 씨팔, 좆같은 세상”(「오월 그 날이 다시 오면」)에서 온 몸으로 실천해야만 “자유”(「자유」)가 왔다고 호령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겠는가.


참으로 세상은 독해지고 사람은 나약해져 간다. 아니 인간이 세상을 독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한상궁 신드롬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장금이에게 곧은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그런 인물을 기대하는 이 현상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독한 시대는 한상궁과 같은 남주를 염원한다. 그리고 그의 시편들과 같은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필요로 한다.


글을 쓰는 내내 온 몸이 격해졌다. 그의 묘지 앞 유리 상자 속에 끼워져 있었다던 “님의 이름이 생각나서/ 여기 잠시 머물다 갑니다/ 삶이 부끄러울 때 또/ 찾아오겠소”라는 정현택 시인의 메모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시대 탓일까, 우리 모두의 탓일까 아님 남주의 진혼처럼 ‘내 탓’(「鎭魂歌」)일까. 시집 위에 쌓인 먼지를 턴다. 여전히 겨울공화국 동토에 죽창으로 피고 있는 남주를 지나간 추억으로만 기억하기엔 불온한 시대의 연속이다. 그래서 더욱 슬픈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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