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과 주거의 공공성 경제부흥과 ‘한강의 기적’으로 통용되는 상투적인 이미지는 반포와 강남 일대의 경작지에 들어선 아파트와 황량하기 그지없는 계획지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발전의 이름하에 토지를 뺏기거나 내몰린 이들이 몇 세대에 걸쳐 동일한 모습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 또한 불도저식 산업화의 비극적 단면이기도 하다. 더더욱 비극적인 것은 삶의 쉼터로 기능하던 집이 투기와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작동하면서 주택마련은 과거 ‘죽기 전 쌀 한 말’의 의미를 훨씬 능가한다는 것이다.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여야 하며, 주거의 공공성은 어떤 방식으로 담보될 수 있는가. 이번 호에서는 삶을 향한 치열한 주거투쟁의 최전선을 통해 우리 시대의 주거를 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공공주택정책, 주거취약계층에 주목하라 이동현 /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 집행위원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00%달성을 넘어 04년 현재 102.2%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그 배면에는 ‘전 가구의 43%가 무주택 세대주’, ‘3백3십만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1백1십2만 최저주거기준 미달 단칸방 가구’등과 같은 현상이 존재한다. 집은 남아도는데 살 집이 없는 역설, 어느 때보다 주거복지정책이 절실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거복지정책은 쪽방 월세의 절반에도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생계비로 소요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 주거비와 주거급여와 재고율 2.5%에 불과한 공공임대주택이 전부다. 게다가 이중 최저 빈곤층에게 지불 가능한 영구임대주택은 6共시절 건설된 19만호에 지나지 않아, 현재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장 11년을 기다려야 하는 등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정책적 방기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지난 4월 27일 국정과제회의 시 ‘임대주택정책 개편방안’을 통해 기존 임대주택 정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공공주택 건설과 배분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100만개 집이라는 공수표 우선,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건설에 필요한 택지, 재원 확보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과연 실시될지 의문이다. 게다가 정부 스스로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해 07년 수요조사를 거쳐 건설기간이나 물량 등을 재검토한다는 모호한 입장을 표하고 있어 건설의지에 대한 의혹을 더욱 짙게 한다. 또한 계획대로 건설된다 하더라도 국민임대주택은 임대료 수준이 높고, 소득을 불문한 임대료 체계로 인해 주거취약계층이 배제될 수밖에 없으나 이에 대한 해소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정부는 07년부터 전산망 구축을 통해 소득·자산을 파악하고 이에 따른 임대료를 부과한다고 하나, 이처럼 쟁점인 사항은 모두 정권 말기로 미뤄져있어 정치적 판단이 아니냐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다. 둘째, ‘도심 내 다가구 등 기존주택 매입임대사업’은 경직된 입주자 선정기준으로 인해, 주거취약계층의 안정망이 되기 어렵다. 지난 04년 9월 첫 입주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5만 가구 공급을 목표로 시행되고 있는 매입임대주택은 입주민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방지하고 생활권내 거주를 보전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매입임대주택 입주자 선정기준 1순위는 모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에 한정되고 있다. 특히 ‘보장시설 수급자이면서 자립적립금이 1천만원 이상인 자’ 기준은 현 수급액 규모로 볼 때 도저히 적립이 불가능한 과도한 규정이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보장시설은 그 범위가 협소해, 노숙인 쉼터 등 사회복지사업법상의 여러 사회복지시설 생활자들이 배제되게 된다. 따라서 해당시설은 사회복지시설 모두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자립적립금 기준은 임대보증금 수준으로 하향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한편, 매입임대주택은 주요 입주 대상을 2인 이상의 가구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거취약계층의 상당수는 2인 이상의 가구를 구성할 여건이 되지 못한다. 주거하향이 이뤄지고, 주거불안이 장기화될수록 가족해체 역시 같은 수순을 밟기 마련이다. 물론, 업무처리지침에 특수 사회취약계층도 일부 입주 가능하도록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특수 사회취약계층’이란 명칭은 이에 대한 정책적 해당 계층이 존재하지 않는 애매한 용어여서 집행 시 이에 따른 선정이 이뤄질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취약계층으로 근거를 명확히 해, 비닐하우스 촌 거주자, 쪽방주민, 노숙인 등 주거 취약계층이 선정대상으로 포함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위에 언급한 국정과제회의에서 매입임대주택의 3백호를 노숙인, 쪽방거주민에게 할당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물량의 일정부분을 떼 주는 방식이 아니라 입주자 선정기준에 주거취약계층 전체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개선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거 취약계층 고려해야 셋째, 쪽방과 같은 염가 주택 밀집지역에 대한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정부는 도심의 소규모 노후불량 단독·다가구주택을 매입 후 철거하여 국민임대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계획 이전에 상당수의 쪽방 철거는 이미 이뤄졌거나 현재 진행형이다. 03년 2백 가구에 달하는 영등포1가동 쪽방이 철거되고, 방음 녹지가 조성되었다. 담당 구청은 실정법에 따른 보상을 지급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하나, 주민의 특성상 보상에서 제외된 수가 만만치 않을 뿐더러, 보상받은 이들의 삶조차 더 추락한 것이 사실이다. 일부는 인근 쪽방촌으로, 일부는 지하도나 공터에서 노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구청은 오는 7월까지 72가구의 쪽방을 다시 철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문제는 그들의 지출능력이 쪽방과 같은 염가숙소 외에 다른 형태의 주거지를 선택할 수 없는 반면, 그 수준에 상응하는 임대료의 공공주택이 없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쪽방이나 비닐하우스와 같은 염가주택들은 ‘불량’하지만 주거복지자원으로써 순기능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을 정비하기 위해서는 주택 건설 계획과 해당 주민들에 대한 실태파악, 실태에 따른 복지지원이 중앙 정부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어버이날 맞춤 상품인지, 요즘 효행 장려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 법을 통해 효도를 장려할 수 있다는 발상만큼이나 엉뚱한 것은, 효행하는 자에게 ‘영구임대주택 우선입주권’을 준다는 것이다. 영구임대주택 입주 대기자가 6만 명이 넘는 현실에서 부도 수표와 같은 ‘우선입주권’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현 공공주택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주거소요가 가장 큰 노숙인, 쪽방주민 등 주거취약계층을 각종 불합리한 선정기준을 통해 배제시켜놓고, 과연 공공주택 정책이라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