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호 [사회기획] 위기에 처한 한국 의료
2005-05-31 15:49 | VIEW : 156
 




위기에 처한 한국 의료





한국은 최근 독특하고 뼈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의사가 약을 조제하는 것을 방지하고 약물오남용을 막아보려는
의약분업이 초유의 의사파업으로 왜곡되고, 의사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서는 ‘국민의 이름으로’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여의도의 누구들과 너무나도 흡사한 이 모습은, 그러나 돈 없는 자 치료받지
말라는 작금의 행태에 비하면 워밍업에 불과하다. 속칭 의료산업화의
밀레니엄, 이제 그 속내를 들여다보자. <편집자주>





의료서비스 산업화론의 허구성


박주영 / 민중의료연합 사무처장







지난 13일 정부는 <의료서비스육성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의 주요기조는 의료부문에도 민간자본의 유치를 활성화함으로써 시장원리에 입각한 서비스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취지다. 병원의 영리법인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을 주요과제로 하는 이 의료서비스산업 육성방안은 실상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의 산업화. 이제 이 개념은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의료서비스 산업이라는 개념은 의료서비스가 사고파는 상품의 하나이며,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의원은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성립된다. 그러나 정말 의료가 산업이며 병원이 기업이 되어야 하는가. 현재 국내 의료법은 영리병원 설립을 금지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의료서비스를 사회적 공공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국내에서 의료서비스 영역을 산업의 개념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03년 정부의 동북아 중심병원 유치계획과 04년 경제자유구역의 영리 외국병원 설립을 둘러싼 논란, 특히 의료서비스를 통한 국부 창출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또한 국내 의료서비스의 질적 취약성의 원인으로 의료서비스 영역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가 지목되면서 이의 완화 내지는 폐지를 주장하는 요구가 높아졌다.




의료서비스 산업화론의 허황된 근거


정부는 해외로 유출되는 의료비가 1조원에 달한다면서 시급하게 의료서비스 산업화 육성을 통해 국부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 상무부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02년 현재 미국병원이 외국환자 진료를 통해 벌어들이는 진료비 수입 합계는 1조2천억원 규모이다. 그렇다면 1조2천억원 규모 중 1조를 우리나라 국민들이 부담하고 있다는 말인가. 전혀 설득력이 없는 이 근거는 04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분석에 따라 거짓임이 밝혀졌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미국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내 환자의 해외 의료비 지출은 최대 천억원 가량이다.


정부가 또 하나 주요한 산업화론의 근거로 드는 사례는 중국의 부유층이다. 즉, 의료서비스를 산업화해서 중국의 부자환자들을 유치해서 외화를 벌어들이자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 또한 현실성이 없다. 이미 미국의 유수 병원(하버드대병원, MD앤더슨암센터, 필라델피아병원, 독일 하노버대학병원 등)이 중국 고소득층 진료를 목적으로 중국에 진출했거나 진출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중국 현지에 있는 미국 유명병원을 제쳐놓고 우리나라를 찾을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싱가폴 민간병원조차도 중국 환자를 싱가폴로 유치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판단 하에 중국 현지에 병원을 세우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통해서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그러나 실제로 각 나라의 고용상황을 살펴보면, 의료서비스 산업화와 거리가 먼 영국 국영의료체계의 병상당 고용자 수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한국 0.9명). 우리나라는 의료서비스가 산업화되지 않아서 병원 부문의 고용창출이 낮은 것이 아니라 고용유발효과가 큰 노인요양보장제도, 요양병원, 간병서비스 등 공공 보건의료 인프라가 취약해서 고용창출이 낮은 것이다. 오히려 이윤만을 추구하는 영리병원의 경우, 비정규직을 양산해 안정적인 고용창출에는 전혀 득이 되지 못한다.




공공의료의 후퇴와 사회양극화


정부는 공공의료 확충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전제로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추진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공공의료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없고, 기획예산처는 07년부터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와 저소득층에 대한 국고지원을 대폭 삭감할 예정이다. 실제로는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말로는 공공의료 확충과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말하는 정부의 이중적인 행태는 결국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희생양으로 만들 뿐이다. 지난 13일 정부가 영리병원 허용방침을 골자로 한 산업화 육성방침을 발표하자, 삼성과 현대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다른 대학병원들도 작년부터 시작된 의료개방 흐름과 의료산업화 조치에 발맞추어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병원이 기업 방식으로 운영되는 의료서비스 산업화는 미래의 사회적 부담을 적정화하기 보다는 고가 의료서비스와 불필요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증가시키고, 의료서비스 전반의 가격 인상을 촉진함으로써 사회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귀결되고 만다.


정부가 말하는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과제들 특히, ‘영리법인 병원 설립 허용과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는 병의원과 환자를 빈부 두 계층으로 나누고, 현행 건강보험제도의 조직적, 재정적 기반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질적 수준이 높거나 수익창출의 가능성이 큰 병의원들이 주로 건강보험을 탈퇴하고, 의료서비스 영역의 기술개발도 이들 병의원의 주도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되면 건강보험에는 상대적으로 질적 수준이 낮은 병의원들이 남게 된다. 환자도 경제적 능력에 따라 둘로 나누어져 충분한 경제적 능력이 있는 환자는 고가의 첨단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영리병원을 이용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환자는 건강보험 적용 병원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이달 19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빈부격차가 점차 벌어져 최악의 수준에 이르렀다. 저소득층의 박탈감 또한 더욱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참여정부가 분배에 사실상 실패했다는 사실은 양극화된 의료체계를 양산할 의료서비스 산업화론을 통해서 확연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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