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호 [사설 2] 4·19혁명이 던져주는 이야기
 
 

107호 [사설 2]

4·19혁명이 던져주는 이야기

 

올해는 봄을 느낄 새도 없이 여름을 맞는 듯하다. 국민들이 사라지길 염원하는 IMF는 좀체로 갈 생각을 않고, 따사로운 봄볕 대신에 벌써 더운 여름의 공기가 우리를 안팎으로 가로막는다. 작년말 대통령선거가 끝난 직후 국가는 어려운 위기였지만 그래도 기대가 있었다. 50년만의 정권교체가 주는 의미가 그랬고, 고희를 훨씬 넘긴 노대통령의 오랜 민주화투쟁의 경력이 그랬다. 겨울을 지나 봄에는 실낱같은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창살 안에 양심수는 여전히 갇혀 있고, 상류층은 더욱 살기 좋아졌다고 한다. 정치권은 서로의 잇속을 차리느라 정신이 없고, 재벌은 근본적인 개혁보다는 또다른 편법으로 빠져나가려 하고, 부도업체와 실업자수는 끝을 모른다. 여전히 철거깡패들의 폭력에는 아무런 제재도 없고, 한총련의 평화적 집회는 기필코 막고야 만다.

4·19 혁명이 일어난 한달 뒤, 김수영은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 뿐이다/그놈들이 배불리 먹고 있을 때도/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그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그대들인데/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고 했다. 작년 연말, 우리는 정말로 ‘그놈들’이 망하고 천국이 올 줄 알았다. 38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대들은 여전히 고생하고 있고, 그래서 불쌍하다.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 세계공황이 언급되고 있고, 클린턴은 검은 대륙을 삼키기 위한 답사를 얼마전 끝냈다. 보수 기득권세력은 자신들의 이익에 조금만 반하는 정책이나 법규라 할지라도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정권교체가 되었다고 안심하고 있을 것인가? 대통령은 신이 아니다. 4·19를 맞는 아침, 남북협상은 결렬되고, 한껏 부풀은 이산가족들의 꿈은 또다른 기약을 하게 되었다.

4월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많은 피로 얼룩진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나서야 우리는 무더운 봄을 보낼 수 있으리라. 4·19 혁명을 기념한다는 것, 그것은 바로 기억이고 잊지 않음이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또다른 탄생을 말한다. 80년대 우리는 ‘혁명’을 노래했다. 이제 ‘혁명’은 지나간 향수일 따름인가?

향내 가득한 대학원건물에서 6인 열사를 바라보지만 아무런 말도 없다. 5월에는 서러움과 절망이 아닌 웃음과 희망을 담은 국화 한다발을 안고 망월동 묘역을 찾아가는 꿈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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