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호 [사설 1] 알맹이 빠진‘모집단위 조정’논의
 
 

109호 [사설 1]

알맹이 빠진‘모집단위 조정’논의

 

5월 4일자, 11일자 중대신문을 보면, 모집단위 조정이 유보되는 이유에 대해 본교 교수들은 ‘본부 기획력 부재 및 의지 부족’으로 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강경대응이라든가 교수 전공 이기주의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절반 이상의 교수가 본부에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흥미롭게 다가서는 지점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팽배한 가운데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중대신문의 설문 행간에 잠복해 있는 논리망이 ‘모집단위 조정’을 끌어안고 있다는 점에서 개혁의 한 방편으로 ‘모집단위 조정’을 강하게 제기하는 셈이고, 결국 이러한 의미망 속에서 “모집단위 조정은 해야할 것”, “이 책임은 학교당국이 져야하는 것”이란 논리가 강화되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묻고 답하는 논리가 철저하게 ‘교육단위의 문제’로만 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학문(學問)하는 곳이라면, 응당 무엇을 배우고 물을 것인가가 중심에 놓여야 할 터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단위의 문제’로만 한정되는 것은 기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즉 교육단위의 재편은 행정단위의 재편과 맞물려 ‘배우고 묻는 행위’를 보족하는 가운데 논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배우고 묻는 행위’는 철저히 사장된 채 ‘제도’의 문제만이 전면화되어 있는 것이다. 교육단위의 재편이 필요하다면, 먼저 이에 따른 커리큘럼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며, 교수의 충원이라든가 담당영역의 구획을 확정해야 하며, 애초 학부제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살리기 위해 대학원과의 연계는 어떻게 구상할 것이며, 이 가운데 본교에서 특화시킬 부문과 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또한 최근 철저히 홀대받고 있는 인문학을 시장논리에 의거해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실용성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모종의 방침을 정할 것인가도 점검해야만 한다.

이러한 부분은 학교당국 일방에서 진행시킬 수 없으며, 학과 단위에서 모색한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인 상황과 대학원생·학부생의 바램을 전제해야만 한다. 학교당국 일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제도화’하는 정도일 것이다. 단지 ‘제도화’의 수위만을 중심에 놓는다면 강제와 획일의 상황만 초래할 뿐이다. 만약 그러한 현상이 바람직하다면, 개발 독재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던 자유의 정신과 시장경쟁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대학 사회에 기대하기는 무리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과연 각 학과의 교수들은 ‘모집단위 조정’ 유보의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라는 물음은 다시 한 번 요청된다고 하겠다.

‘교육단위의 조정’ 문제는 그 자체에서보다는 ‘배우고 묻는’ 정신에 어떻게 부합할 수 있는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단지 “바뀌어야 산다”라는 구호만이 무성한 상황에 대해 여유있는 사고가 아쉬운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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