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호 [사설 1] 귀벤 도새기 그리고 우리
 
 

110호 [사설 1]

귀벤 도새기 그리고 우리

 

제주도 방언에 ‘귀벤 도새기’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도새기’가 ‘돼지’니까 ‘귀벤 도새기’는 ‘귀가 (칼 따위로) 베인 돼지’ 정도가 될 것이다. ‘귀벤 도새기’는 그 아픔 때문에 길길이 날뛰는데, 그 날뛰는 몸놀림이 얼마나 민첩할 지는 누구나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가을 감귤 수확철이 되어 ‘귀벤 도새기처럼 내려와라’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아 일손이 상당히 모자라구나’하고 생각하면 된다. 그만큼 급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달 25일 학생회 주최 공청회가 있었고, 26일에는 교수협의회 주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현재 학교당국이 진행하는 작업에 대한 이견이 심각하게 드러나기도 했고, 논의의 맥을 짚어 ‘제도’의 문제로만 한정되는 상황을 지적하는 입장도 있었다. 또한 강경대응을 시사하는 학부 학생회의 발언도 터져나오고 있다고 하며, 토론의 내용에 상관없이 “모든 사항은 이미 학교당국 일방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대세 판단도 부각되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실질적 논의의 여지는 상당히 협소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6월1일자에 실린 중대신문의 지적은 적절하게 다가온다. “모집단위 조정의 충분한 논의를 위해 9월 연기라는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다가올 기말고사와 2개월여의 방학기간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실질적인 논의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 즈음에 이르고 보니 ‘귀벤 도새기’라는 표현이 생각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귀벤 도새기처럼’ 모집단위 조정을 향해 정신없이 날뛸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을까.

교육부가 세칭 ‘사립대학교 자율안’을 내놓은 것은 93년이다. 말이 ‘자율안’이지, 교육부는 이를 평가의 척도로 활용함으로써 ‘강제된 자율’을 유도하였다. 따라서 교육부의 ‘강제된 자율’에 책임을 묻는 것은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이는 일면일 뿐이다. 그나마 그 강제 속에서도 자율의 부분은,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문은 당연하다. 우리 학교에서는 교육부가 제시하는 여러 모형 중 하나를 채택하거나 몇 가지의 특성을 결합하는 방식의 모색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가. 또한 중앙대학교의 장기적 전망과 개혁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며, 교육단위 조정은 이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여기에 대해 학내 제주체들에게는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었는가.

94년 교수협의회의 공청회 자료를 살펴보면 무척이나 흥미롭다. 현재의 상황을 전제로 한 듯한 발표문이 몇 편 눈에 띠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강내희 영어영문학과 교수의 글이다. 많은 교수들이 강교수의 입장에 동의하는 이번 토론회의 분위기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외부의 상황을 장황하게 들이댔을 때, ‘귀벤 도새기처럼’ 길길이 뛸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 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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