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호 [사설] 공간은 고정적이다
 
 

138호 [사설]

공간은 고정적이다

 

‘공간은 유동적이다.’라는 말의 함의는 크다. 이번 전대회에서 공간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왔을 때, 총학생회장은 모든 주체들이 ‘공간은 유동적’이라는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어떻게 저 움직이지 않는 공간을 흐르게 만들 것인가를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공간은 이동하지 않는다. 이동하는 것은 사람이며, 엄밀한 의미에서 유동적인 것은 사람이다.

결국 사람의 마음이든, 사람의 행동이든 간에 움직여야 할 대상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이는 과연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 기준과 차이가 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현재 상황은 이렇다. 각 계열별 연구회는, 계열 내규에 의해 인준과정을 거쳐 연구회를 평가하므로, 총학생회에서는 계열이든, 계열별 연구회든 평가할 대책이 없다. 부실한 연구회를 움직이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 유일한 해결책인 계열 내 평가에 의한 이동은 계열사무소와 연구회와의 관계를 볼 때 제로에 가깝다. 그러니 움직이려고 해도 방안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간은 유동적이다’라는 사실에 각 주체가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은 각 주체들이 대단한 성숙성을 지녔다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만큼의 양보와 겸양의 미덕을, 그리고 하나의 기준이 마련되었을 경우, 차이가 발생하였을 경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또 문제는 간단하다. 기준을 마련하면 된다. 하지만 이 조차 쉽지 않다. 가령 예술계열의 경우 각 개인의 창작작업을 연구행위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다른 계열에 논문 쓰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삼더라도 비슷한 차원에서 연구행위로 간주한다면, 예술계열의 공간 배정은 정당성이 약하다 즉, 어디까지 연구행위 혹은 연구회로 설정할지는 상당히 미묘한 문제다.

그러므로, 공간 선정은 이제 고정적인 영역확보의 교두보가 될 수밖에 없다. 혹자는 여러 사안이 걸린 시기에 집안싸움을 이기주의라고 탓할지 모르지만, 위의 전제 조건들을 검토하고 보면 결국 계열의 운명이 달린 문제다. 물론 좀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사안의 해결은 행정당국과의 마찰을 통해 수습해 가야하겠지만, 그 많은 회의를 거쳐 얻어낸 합의라고는 ‘공간은 유동적이다’라는 실효성 없는 원칙만을 천명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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