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호 [사설] 비판은 하나의 관점이다
 
 

148호 [사설]

비판은 하나의 관점이다

 


객관적 사실은 필연적으로 특정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이가 의미하는 것은 ‘객관적’이라는 것이 신화의 한 편린일 뿐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기사’쓰기라는 특수한 글쓰기의 환경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기사를 통해, 대학원발전계획과 함께 무성의를 보이고 있는 대학원당국과 본교 본부에 대해 비판했다. 그리고, 이미 학교발전이라는 큰 범위에서 일정정도 궤도가 틀어져버린 ‘메디컬센터’ 건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또한, 의약분업과 관련된 의료계의 전문가주의에 대해 질타를 가했다.

사실 어떤 대상을 비판한다는 행위는 우선적으로 자신의 내성을 요구한다. 그 사건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과연 ‘그와 같은’ 비판의 바탕으로서 우리 스스로는 ‘적절한 진지함’을 지니고 있는가라는 자문과 함께 무엇을 말하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 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가끔 기사를 쓰는 작업이 객관성과 사실의 오류 사이에서 혼란스럽게 판단되고 있음을 느낀다. 기사의 객관성이란 ‘입장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관점이 분명한 사실을 근거하고 있는가로 판단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그 관점에 대한 비판은 다른 관점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껏 취재원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기사가 나간 후 다시금 그들을 만나게 될 때면 하나의 특징적인 인상을 접할 수 있었다. 비판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인데, 유달리 그 대상이 언급이 될 때마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신문 기사가 수행하는 것은 분명 특정한 주제범위에 한정된다. 그리고, 그 주제에 한정된 논거들과 그에 따른 문제점들을 부각시키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학원장의 외유에 대한 비판기사에 이어진 반응은 우리를 난처하게 한다.

분명, ‘10월중 공개포럼’이 그 비판의 근거였음에도 대학원장이 보인 그 밖의 대학원 지위쇄신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한참이나 어긋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비판이 ‘비난’으로 들리기 때문에 여전히 비판을 하고자했던 그 문제들을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속사정을 일일이 밝혀야 할 만큼 비판의 대상은 그 비판을 수용하는데 낯설다. 우리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다른 곳이 다른 자원을 지니고 있듯이 우리는 ‘신문’이라는 자원이 활용할 뿐이다.

단언하건데, 신문제작을 특권이라면 그것은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만들어준’ 특권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