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호 [사설] '표절'하는 대학사회
 
 

163호 [사설]

'표절'하는 대학사회

 

지난 18일 동서대 백 아무개 교수 등 국내 교수 3명이 통신 분야의 전기·전자 학회지 ‘커뮤니케이션 매거진’에 캐나다 빅토리아대 에릭 매닝 교수 등 3명의 논문을 표절한 사실이 밝혀졌다. 백 교수의 논문은 지난 2월 경북대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그의 스승인 경북대 박 아무개 교수와 포항공대 홍 아무개 교수의 공동명의로 위 학회지에 발표했다가 표절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표절 논문으로 국내 박사학위를 받게 된 게 첫 번째 의혹이다. 여기서 의혹은 복잡한 인맥으로 구성된 학계가 그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했으리라는 것 또는 표절조차 가릴 수 없을 만큼 학계의 비리가 상존해 있다는 것으로 나뉜다. 두 번째 의혹은 백 교수를 포함한 3인이 일종의 공범이 되었다는 점에 있다. 제자의 학위논문으로 공동 저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기 힘들다. 그런데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보다 큰 의혹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교수사회 아니 대학사회 일반이 이런 표절의 관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 않느냐는 게 그것. 이에 대학사회 내부에 뿌리 깊게 퍼져 있는 비리와 병폐를 문제 삼게 된다.

요컨대 지식사회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그런데 이런 문제를 과연 ‘도덕성’의 문제로만 환원할 수 있을까. 표절 교수들은 연구실적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토로한다. 상대적으로 다르겠지만, 많은 석박사 연구자들 또한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역설한다. 하지만 어느 학문영역,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베끼고 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논문내용을 그대로 따오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인용문과 참고문헌이 대동소이하고 다루는 주제가 한결같다는 얘기다. 여기서 우리는 이 문제의 본질이 결코 ‘도덕성’에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관행이며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이다. 논문의 가치가 전도돼 있는 상황, 양적인 실적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현실이 그렇다. 여기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함을 안다. 연구성과의 질보다는 몇 가지 항목으로 평가하는 우리 학계의 고질적인 관행이 그것을 재생산한다.이런 논지가 표절 당사자를 옹호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다만 도덕성의 문제로 귀결될 때 특수한 몇 가지 사례로만 파악될 가능성이 농후하며, 연구자들이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을 게 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중앙우수논문제’와 ‘중앙논단’의 취지는 최초 건설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리라. 그러나 그 논문들이 얼마나 질적으로 우수한 것인지 선뜻 판단이 서질 않는다.

뛰어난 연구성과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그 기초부터 엄격히 따지는 게 중요하지는 않을는지. ‘총괄정원제’로 닥쳐오는 시장논리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있다면, 투명한 논문생산의 과정을 만드는 것은 아닐는지. 앞으로 쏟아져 나올 수많은 학위논문들이 과연 얼마나 우리 학계에 이바지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정녕 우리는 표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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