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호 [사설] 학벌로부터 시작되는 권력
 
 

167호 [사설]

학벌로부터 시작되는 권력

 

올 초 교육부장관이 입사원서에 학력 기재란을 없애자고 주장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능력평가 잣대로 학벌을 옹호했다. 학벌과 학벌주의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시대 만성질환과 같이 부정적인 어떤 것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학벌과 학벌주의는 상이함 맥락을 갖고 있는 단어이다. 학벌은 개인의 학력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대학교를 졸업했느냐, 고등학교를 졸업했느냐 등을 구분할 때 학벌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즉 그 자체로 가치판단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 반면, 학벌주의는 특정 학벌(명문대학교)과 동문회를 중심으로 권력이 행사되고 이것이 부당하게 사회에 적용될 때 사용된다.

이렇게 학벌과 학벌주의를 구분하는 이유는 학벌과 학벌주의에 대한 개념상 오류가 학벌주의의 실상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즉 특정 개인에 대한 평가 잣대와 관련되어 ‘학벌주의는 문제를 갖고 있지만 현재적 수준에서는 옹호해야 하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학벌 외에는 사회적으로 개인 능력을 평가할 잣대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즉 기업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수많은 사람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기준이 학벌 외에는 합의된 잣대가 없다. 만약 또 다른 평가잣대가 있다면 그것은 우습게도 지연일 것이다. 따라서 현재 수준에서 학벌을 통한 개인의 평가는 그나마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학벌 그 자체가 이미 불안전한 합리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학벌주의는 능력평가와는 관계없는 권력과 서열체계일 뿐이라는 점이다.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이 지방대 학생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지 우리는 확인할 수 없다. 입시위주의 암기식 학습만을 강요받는 현재 교육체제에서 명문대 입학생과 졸업생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전제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어쩌면 암기능력이 뛰어난 사람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로서 학벌은 불안전하기만 하다.

학벌 그 자체의 합리성이 의심받는 실정에서 학벌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벌주의라는 권력관계는 순식간에 특정 개인을 우월한 존재로, 다른 개인을 열등한 존재로 서열화 시킨다. 특정영역에 대한 개인의 능력평가와 그 개인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것 사이에는 몇 가지 매개가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시대의 학벌주의는 명문대학교 졸업장만으로 수 많은 판단과 인간가치를 무시한 체 우월하고 성공한 인간과 열등하고 실패한 낙오자를 갈라친다. 학벌주의가 이렇다 할 때 과연 학벌주의는 ‘학벌’이 사람 개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그 나마 사회적으로 합의된 잣대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모습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동문회 술자리를 통해 얻는 취직자리부터 본교 출신의 석사·박사과정생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는 한편으로는 명문대 학벌주의를 흉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의 학벌주의를 구성하려고 악다구리를 쓰고 있는 우리의 이중적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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