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호 [사설] 주 5일 근무제 도입에 부쳐
 
 

169호 [사설]

주 5일 근무제 도입에 부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가 유행이다. 여기에 지난 27일 공무원들은 주5일 근무제 시범을 위해 첫 토요일 휴식을 실시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주5일 근무제와 노동시간단축을 주장해왔던 민주노총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5일 근무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IMF구제금융과 구조조정과정에서 노동계를 중심으로 실업문제 해결안으로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제시됐다. 성공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 프랑스의 선례를 따라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단축 논의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노동시간단축 논의는 99년을 기점으로 하여 일자리 창출이 아닌 ‘삶의 질 향상’ 논의로 이동됐는데, 이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근거와 맞물린 것이다. 즉 프랑스에서는 성공적인 노동시간단축이 일어났지만 노동시간감소에 비해 늘어난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적으며, 증대된 일자리는 정규직이 아니라 불안정노동이었다.

그렇다면 노동시간단축, 주5일 근무제는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가. 노동시간단축은 칼 마르크스가 영국의 공장법을 분석했던 시기부터 자본가와 노동자 싸움의 핵심적인 고리로 여겨졌다.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자본가들은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반면, 노동자들은 여가시간이 증대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주5일 근무제와 노동시간단축이 이뤄진다면, 남성의 가사노동부담이 증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것은 순수한 가정일 뿐이다. 실제 한국에서 주5일 근무제 도입이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으로 연결되기에는 많은 제약들이 존재한다. 현재 논의되는 주5일 근무제는 노동조건의 후퇴와 실질임금 하락을 전제로 한다. 노사정 위원회에서 논의되는 생리휴가와 월차의 무급화, 휴가축소는 노동조건 후퇴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또한 노동조건 후퇴와 임금삭감을 전제로 한 주5일 근무제가 9년 동안 단계적으로 실행될 경우 저임금 불안정노동자들은 심각한 생존권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가장 늦게 주5일 근무제를 경험하게 되는 저임금노동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긴 노동시간, 낮은 임금과 노동조건의 후퇴를 동시에 경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주5일 근무제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도입될 경우 주5일 근무를 통한 삶의 질은 기업이 필요로 할 때 노동할 수 있는 조건으로 변경되어 노동자의 삶의 기획을 불안정하게 한다. 또한 현재 많은 부분의 노동과정은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모든 여가시간이 노동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소비되도록 종용한다. 노동시간을 준비하는 여가시간은 개인의 잠재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향락적 소비를 수반한다.

이런 문제가 주5일 근무제 자체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의 삶의 질과 경제적 안정을 볼모로 삼는 제도가 아닌, 노동자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재탄생해야 하는 문제이다. 5월 1일은 세계노동자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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