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호 [사설] 우리에게 월드컵은 어떤 의미인가
 
 

172호 [사설]

우리에게 월드컵은 어떤 의미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2002 FIFA 월드컵이 진행되고 있다. 어떻게든 16강에 진출하자는 국민의 염원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인지 한국은 폴란드전에서의 승리와 미국전에서는 무승부라는 성과를 냈다. 꿈에 그리던 16강진입은 아직도 큰 가능성으로 남아있다. 사람들이 월드컵에 열광하는 이유는 축구선수가 잘 생겨서, 축구가 좋아서 등등 다양할 것이다. 축구라는 게임에다가 쟁쟁한 나라별로 싸움을 붙여놨으니,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기면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좀 지나치다 싶게 월드컵에 열광하는 것 같다. 각 대학에서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월드컵 경기를 같이 응원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붉은악마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고, 한국전 있는 날에는 여기저기 붉은 물결이 춤을 춘다. 경기가 있는 시간에는 온 도시가 택시도 다니지 않는, 사람 없는 유령도시가 되어 버린다.

월드컵에 대한 열광이 단순히 개인적 취미와 오락으로만 간주될 수 있다면, 굳이 문제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적 취미와 오락을 넘어선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일종의 권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대학원 수업은 한국전에 앞에서 휴강되고, 학생들은 월드컵 경기장에 가야하기 때문에 숙제를 예정된 제출기간이 내지 못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진행되었던 노점상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적 단속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손님 치르는 기간이라는 말로 정당화된다. 손님 치르다가 굶어죽는 사람이 생길 판이다. 비단 이런 문제는 한국에만 있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러시아에서는 축구경기 패배 이후 폭동이 발생해 3명이 사망했다. 아마 한국도 한?미전에서 패배했다면,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이 바로 미국대사관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축구와 월드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사람이 죽고 모든 것이 월드컵으로 가기만 하면 해결되는가.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파쇼적 스포츠 민족주의와 경제붐을 다시 한번 일으켜보려는 자본의 의도와 교묘히 결합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한 경제전문지에 따르면 월드컵으로 인한 경제붐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경제붐이 지속되는 현상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속해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월드컵을 지점으로 거대한 내수소비시장이 형성되어야 가능하다. 신용카드 과다사용으로 대량의 신용불량자가 생기는 마당에 각 집마다 빚만 늘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얼굴에 I Love Korea를 써 놓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애국자 투성이다. 코리아팀을 응원하는 것인지, 한국을 응원하는 것인지 혼동스럽기만 하다.

누구나 개인적 취미와 취향이 있다. 하지만 그 취미와 취향이 다른 것들을 은폐시키고,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잠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열기를 식히고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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