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호 [사설] 우르르 몰려다니는 철새 나라
 
 

178호 [사설]

우르르 몰려다니는 철새 나라

 

한국인들은 흔히 자신의 취미로 독서를 내세운다. 그런 한국인이 1년에 평균 9.7권의 책을 읽으며, 평균 독서시간은 평일 40분, 주말 27분이다. 가장 즐기는 책은 소설과 잡지다. 한국인 10명 중 4명은 한 달 동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TV 책 소개 프로그램 ‘느낌표’ 선정 도서가 장기간 베스트셀러 집계표를 독식해왔다는 것은 스스로 책을 골라서 읽는 능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독자들이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 영역보다 ‘남이 읽으니까’, ‘TV에서 소개했으니까’ 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읽는 철새들이 많다는 것이다. 급기야 최근 한국출판인회의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집계표에서 ‘느낌표’ 선정도서를 제외키로 했다 한다. 출판가에서는 ‘느낌표’ 선정 도서탓에 2002년 베스트셀러 집계표는 시대상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곧 올해의 무슨 ‘문학상’ 수상집들이 발간될 것이다. 한 작가의 다른 작품집은 한 권도 읽지 않았으면서도 단지 수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달랑 그 책 한 권을 읽을 것이다. 그것으로 올해의 교양인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끝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철새 경향의 성격은 휴대폰 바꾸기 유행에서도 나타난다. 휴대폰 기기의 성능과는 상관없는 지금의 휴대폰 유행은 분명 거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3~40만원대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의 휴대폰을 품위의 지표처럼 여기고 있다. 소비자들의 휴대폰 기기 선택 기준은 기기의 견고함이나 이용의 편리함이 아니라 벨소리, 컬러 화면 등 부가적인 기능에 치우쳐 있다. 즉 소비자들은 휴대폰 기능 자체보다 휴대폰의 상표와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려 한다. 이러한 철새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의 것을 아무런 여과과정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철새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여건이나 취향 혹은 분위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따라한다는 즉흥주의적 심리가 있다. 그것은 사회분위기를 일시에 한쪽으로 몰아가는 광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의지대로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철새들의 세태 속에 합류하지 않을 경우 심한 소외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소비 문화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제의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 남은 지금, 철새 정치인들의 문제는 더욱 심하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정치인들이 어떠한 윤리적 의식도 갖지 않은 채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해 줄 대통령 후보의 뒤로 줄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의 모든 철새들이여, 자신이 떠나온 곳이 어디인지 진정으로 고민해보길 권하고 싶다. 그리고 줏대있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흔들리지 말고 날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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