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호 [사설] 한국정부는 학살에 참여하지 말라
 
 

182호 [사설]

한국정부는 학살에 참여하지 말라

 

미국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결정적인 시기마다 한국이 고려해야하는 중요한 사항으로 등장했다. 냉전 체제 하에서 미국은 소련의 동북아시아 진출을 막고 일본이라는 시장을 지키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전후에도 해방군으로 행세했다. 정통성 없는 박정희 정권은 더욱 미국의 눈치를 보게된다. 이러한 상황은 더 많은 경제 원조를 위한 베트남에 파병을 결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던 단어가 ‘국익’이었다. 그리고 파병의 출발은 의료와 공병부대 였다.

역사는 반복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것인가. 지금의 파병 논의도 어딘가 닮아있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우는 파병의 가장 큰 이유는 ‘국익’이다. 파병 대상 역시 의료와 공병부대이다. 노무현 정부의 국익론의 골자는 이라크 전쟁이후 미국의 북에 대한 무력 사용을 막기 위해서 미국의 침략적 전쟁에 강한 지지와 직접적인 파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 지구 반대편의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이러한 국익론은 명백한 허구이다. 이는 미국의 속셈에 대한 적극적인 찬성에 불과하다. 또한 “골목은 골목대장이 있어야 조용해진다”는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의 발언은 현 정부의 미국관을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이 말은 한국은 미국이 흘리는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인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골목은 조용할 수 없다.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조정하는 공간이지 단순한 통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명확히 해야할 것은 한반도에 위기 의식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진정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은 94년에 북미간 협상을 고의적으로 위반하고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다. 만일 미국이 이라크에 사용했던 억지 논리를 그대로 북한에 사용한다면 한국 정부는 무엇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국제 사회로부터의 반전 여론은 무슨 수로 얻을 것인가.

자본론에 있는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는 모든 자본가와 자본주의 국가의 슬로건이다”라는 맑스의 말은 지금 미국의 모습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미국과 미국의 다국적 석유 기업들에게 이라크의 민간인들과 후세인은 자신들의 이익과 자본의 확장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미국에게 있어 자신의 지배력 안에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이라크 민간인들의 미래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미국의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대해 명백한 반대 의사를 밝혀야 한다. 또한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철회하고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거는 행렬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평화는 완성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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