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호 [사설] 파병반대, 한국이 봉이냐
 
 

189호 [사설]

 

파병반대, 한국이 봉이냐

 

또다시 파병논의로 온 국민이 술렁이고 있다. 지난 4월 파병은 대다수의 국민들의 주권국가 국민으로서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양식 있는 사람들의 하나된 목소리를 무시한 채 일사천리로 진행됐었다. 지금은 파병의 유일한 명분이었던 국익과 외교적 실리는 구실에 지나지 않았음이 명백해졌다. 정부는 짝사랑에 몸 달은 사람처럼 호들갑떨며 파병결의안을 미국에 상납했지만 소위 영원한 우방 미국은 북핵 초강경 대응과 또 한번의 파병요청으로 응했을 뿐이다. 도저히 제로섬이 되지 않는 이상한 계산이라는 것을 노무현 정부는 애초에 정말 몰랐을까. 4월 파병은 우리 스스로가 걸려든 덫이다.


게다가 21세기의 첫 장을 치욕으로 뒤덮으며 국제사회와 유엔마저 무시한 채 야만적으로 개전된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은 결국 자충수였음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애초에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 찾기에 7천명의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죽이고 수 천년 역사의 고도를 불태웠던 미국은 종전선언 후에야 ‘진짜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인 명분과의 싸움이다. 중동지역에 친미정부를 세워 중동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위선적인 ‘이라크 재건사업’이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자 이제 뻔뻔하게도 미국은 유엔의 탈을 쓰고 국제사회에 손을 벌리고 있다.


의료부대나 공병부대도 아닌 전투병 1개 사단을 보내라는 미국의 이번 파병 요청은 한마디로 재고의 여지없이 거부해야 한다. 날조된 명분논리로 침략전쟁의 전범이 되어 피해국의 국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미국의 더러운 군사패권주의를 용인하고 불명예스런 힘의 역사에 동참하는 일이다.


한편 정부는 미국의 파병요청이 9월 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름이나 지나 이 사실을 공개했다. 한국 정부에게 필요했던 보름간의 고민의 시간은 국민을 위한 것인가 미국을 위한 것인가. 이번 파병요청과 국가안보나 한·북·미 관계에 대한 털어놓을 수 없는 중요사안이 맞물리기에 공개시기를 고심했다는 한 정부당국자의 발언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또 한번의 굴욕적 파병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정부는 터져 나오는 파병반대의 목소리에 이번만큼은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4월 파병 이후 정부에게 등 돌린 많은 수 국민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이 전면을 향한 분노로 변하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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