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호 [사설] 매카시즘의 부활과 내몰리는 경계인 송두율
 
 

190호 [사설]

 

매카시즘의 부활과 내몰리는 경계인 송두율

 

 

송두율은 틀렸다. 저서 <경계인의 사색>(한겨레신문사, 2002)에서 “남북이 상대를 이제 자기 안의 타자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그의 말이 무색하게도 그는 화해할 수 없는 영원한 타자들간의 경계에 다시 서게 됐다. 37년만에 찾은 고국이건만 당시와 어느 것 하나 달라지지 않은 보수언론과 국정원, 검찰은 그를 경계에서 다시 절박한 낭떠러지로 밀어내고 있다.


이에 더해 한나라당은 송두율 사건을 ‘건국이래 최고위급 간첩사건’으로 규정하고 정권 차원의 기획입국설, KBS의 송두율 미화공작설 등 온갖 정치적 음모로 붉게 채색하며 노무현 정권과 그간 기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던 진보·개혁세력에 반격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파상공세는 적중했다. 인권 변호사 출신 노무현 대통령은 서둘러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발뺌을 하고, 한 포탈 사이트의 설문조사 결과 네티즌의 70%가 송두율을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송두율=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의 등식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터부시되고, 송두율을 초청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각 시민·사회단체에게도 송두율은 어느새 ‘약한 고리’가 됐다.

 

이제 아무도 지난 달 입국한 해외민주인사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송두율이 간첩이니 그들도 똑같은 간첩이라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그들을 두둔하다 자신들에게 돌아올 붉은 화살이 무서워서일까. ‘친북인사’ 혹은 ‘반국가단체’로 붉은 낙인 찍혀 수십년간 입국금지 당한 해외민주인사들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던 목소리도 어느 새 사라지고 말았다. 30여년 간 해외민주인사들에게 잔인하기만 했던 고국은 이제 더욱 차갑게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그들을 동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허나 군사독재의 서슬퍼런 칼날이 지배하던 70년대부터 해외에서 군사독재와 냉전에 맞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싸우고 이에 대한 대가로 추방과 입국금지를 당했던 그들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간첩’이라는 한마디로 단죄해 버리기에는 그들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지 않은가.

 

송두율 사건을 계기로 다시금 매카시즘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색깔론과 이념공세, 위축되는 국정원의 활로찾기, 보수언론의 ‘기회는 이때다’하는 발상 등이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송두율을 비롯한 해외민주인사들이 이들의 희생양이 돼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그들에게만 맡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시민·사회단체들과 학계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