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호 [사설] 이 땅에 살기 위하여
 
 

196호 [사설]

 

이땅에 살기 위하여

 

 

16대 국회가 또다시 사고를 쳤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악하고, 이주노동자들을 내쫓고, 이라크 추가파병안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통과시키는 등 계속해서 사고를 쳐오던 국회가 이번에는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고 이를 가결시켰다.


흔히들 이번 탄핵과 관련한 파국을 두고 ‘치킨게임(chicken game)’에 비유한다. 치킨게임이란 국제정치학 중 게임이론의 한 모델로서 마주보고 차를 몰며 달려들다가 먼저 핸들을 꺾어 피하는 쪽이 겁쟁이(chicken)가 된다는 이론이다. 겁쟁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 어느 한쪽도 멈추지 않고 달려들다가는 결국 충돌이 나서 파국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탄핵안 가결 이후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이 치킨게임을 빗대어 탄핵안 가결을 ‘닭짓’, 국회의원들을 ‘닭대가리’, ‘닭들’이라 표현한 글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는 단순한 비아냥이 아닌 “헌정사상 초유의” 사고를 친 보수정치권에 대한 환멸이 희화화돼 표현된 것이다.


언론에서 헌정 초유의 사태니, 각 당의 지지도가 얼마나 변했고,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한창 정신없이 시끄러웠던 지난 13일 울산에서는 <박일수 열사 정신계승!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언론 하나 이 싸움에 주목하지 않았다. 멱살잡고 싸우는 국회의원들도, 당장 무슨 일이 나는 것처럼 떠드는 언론들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눈물 흘리며 슬퍼하던 이들도 비정규직 차별철폐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수백만에 이르는 사회 절대빈곤층과 신용불량자들, 한·칠레 FTA로 생존의 위기에 처한 농민들, 40만명을 넘어선 청년실업, 대학원 가까이서 접하는 시간강사 노동권 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누가 권력을 잡는가만 보일 뿐 위기에 빠진 민중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을 ‘부적절한 이유’로 ‘자격없는 이들’이 탄핵한 것에 대해서는 단호히 비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탄핵 이전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수십~수백억의 달하는 불법자금을 받은 보수정치권을 봤었다. 또 탄핵 이후에는 탄핵이 가져올 자기 당에 대한 손익계산에만 정신없는 보수정치권을 보고 있다. 이제 누가 더/덜 잘못했냐, “탄핵반대=친노/타핵찬성=반노”라는 논리, 어느 당이 총선에서 얼마만큼 표를 얻느냐 등의 논의를 떠나 우리의 삶의 문제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난 주말 광화문에 모였던 수만명의 시민들. 이제 그들을 탄핵반대 시위에서만이 아니라 3·20 반전행동 집회에서 그리고 노동자·민중들의 삶이 위협받는 곳에서 만났으면 한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