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호 [사설] 연기금을 건들지 말라
 
 
207호 [사설] 연기금을 건들지 말라


연기금을 건들지 말라


요즘 정치권을 보면 재밌다. 국회에서 매일 으르렁거리며 싸우더니 이제는 정부부처간에도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지난 19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국민연금운용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입장을 밝힌 것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장황한 수사를 곁들인 긴 글의 짧은 요지는 이렇다. ‘연금운용의 기본적 원칙인 안정성, 수익성, 공공성의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겠다는 것’과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적인 권한과 책임을 확실히 행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정부와 여당이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을 통해 모든 연기금을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연기금을 활용해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으로 동원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이른바 ‘한국형 뉴딜정책’ 에 반한 것이다.
김 장관의 말은 일단 맞다. 국민연금은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국민에 의해 조성된 기금이지 정부가 필요할 때 마음대로 끌여다 쓸 수 있는 국가재정이 아니며 이는 기금의 취지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법률이 정한 기금의 운용원칙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다짐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동안의 보건복지부의 행보를 봤을 때 김 장관의 발언은 성난 국민들을 달래기 위한 사탕발림이나 정치적 제스쳐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보건복지부는 경제특구에 외국병원유치를 위해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갑자기 적극 검토하겠다고 하더니, 끝내는 수용해 버렸던 비일관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루 아침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정책협의회를 신설하여 기금운영위원회 위원의 추천권을 갖도록 하고, 가입자 대표의 참여 수를 줄이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이는 분명 국민의 참여를 배제하고 연기금에 대한 국가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뻔한 속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김 장관이 한 발언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만약 김 장관이 자신의 말에 책임지고자 한다면 현재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국민연금법 개정안부터 철회해야한다. 그리고 연금운영의 기본적 원칙이 지켜지고 기금운영위원회의 독립적인 권한과 책임이 보장되기 위해 ‘기금관리기본법’ 폐기와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독립화’를 이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번 그의 발언은 자기 개인의 정치적 행보나 자존심만을 위한 것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 될 것이다.  
재정경제부처럼 연기금을 '경제적' 목적을 위해 사용해서도 안되지만, 김 장관처럼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해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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