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호 [刮 目] 자본의 시녀가 된 아카데미즘
2005-05-15 17:45 | VIEW : 26
 
刮  目 : 자본의 시녀가 된 아카데미즘

 

 

진설아 / 국문학과 박사과정





지난 2일 고려대에서 발생한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저지 시위에 대한 파장이 크게 번지고 있다. 고려대는 10명의 처장단이 사표를 제출했고, 시위를 진행한 고려대 학생들과 이 사건에 대한 수많은 얘기들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결국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은 민주노동당원이며 해직노동자들도 참석했다는 과격한 내용까지 뉴스로 다뤄지면서 이 사건은 국회로까지 향하게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사실 이 사건은 어떠한 도움에 대해 감사의 선물을 전하겠다는 아주 간단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들이 경영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학교가 철학박사학위를 주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어윤대 총장은 이러한 학생들을 나무라면서 하버드도 ‘록펠러 찬갗를 헌정한 적이 있다는 예를 든다. 사실 학교 안에 경영인이나 도움을 준 이들에게 헌정하는 장소나 조형물을 두는 식의 선물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학위 문제는, 그것이 비록 명예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할지라도 역시 다른 문제일 수밖에 없다.


대학원이라는 공간에 몸담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 실용적인 학문을 공부한다 할지라도 역시 아카데미즘의 권위를 믿는 사람들이며 학위는 이러한 아카데미즘의 상징이다. 물론 현대의 아카데미즘은 보수적이고 지루한, 발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으로 전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대학의 권위와 아카데미즘의 존재를 굳게 믿고 있다.


명예박사·석사라는 이름의 선물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것을 보면 틀림없는 일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에게 이 ‘명예’라는 이름을 붙인 선물은 일종의 아카데미즘이 주는 권위와 상징적인 권력을 안겨주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학위를 얻기 위해 다른 이들이 겪는 과정―입시에서 시작해 오랜 기간에 걸친 노력 끝에 학위수여식에 도달하는―을 단번에 뛰어넘어서 대한민국 최고의 학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명예박사라는 신종 선물세트는 이러한 아카데미즘의 변질된 상징권력이며 그에 대한 위협이다. 이는 자본의 뒤를 따르는 시녀가 된 아카데미즘의 모습과 한국사회의 학벌중심주의의 파행을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10년을 걸려 박사학위를 딴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자가 되면 박사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대학은 지금 자신들이 포장해둔 ‘명예’라는 이름의 선물이 대학의 명예와 아카데미즘을 위협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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