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호 [사설 1] 준비된 어학시험의 명암
2003-03-09 00:47 | VIEW : 4
 
121호 [사설 1] 준비된 어학시험의 명암

지난 19일 어학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당락에 따라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응시한 원우들의 얼굴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어학시험도 관례적인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제 어학시험에서 떨어지면 학과에서 추억거리로 ‘왕따’당하기 쉽상이다.
그러나 이번 어학시험에서 더욱 난감했던 것은 석사, 박사의 문제수준이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마치 시험지가 뒤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석사, 박사의 문제수준은 그 ‘기준’이 모호했다. 일례로 석사는 X라는 어휘분량, 박사는 Y라는 어휘분량을 갖춘 지면을 출제한다는 식의 최소한의 규정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단 말이다. 더구나 일정한 지문내용이라든지, 문장수준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물며 지문길이도 별반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어학시험의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학기마다 뒤바뀌는 출제경향도 그러하고, 계열별 출제경향도 그렇다. 대체로 학기별 출제경향은 독해중심적인 패턴, 독해와 작문이 뒤섞인 패턴이 번갈아가며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독해와 작문이 뒤섞인 패턴을 접한 응시자들은 “똥밟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리곤 기다린다. 다음 학기에 독해중심적인 패턴이 나오면 통과할 수 있으니까.
또한, 계열별 출제경향도 마찬가지이다. 알다시피 예술계열은 어학시험을 응시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영어순해’를 반드시 이수해야만 한다. 예술계열 원우들이 영어와 담쌓고 산다고 판단해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자격요건을 가르는 ‘근거’가 무엇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예술계열 원우들의 어학실력을 의심해서인지, 혹은 예술계열 원우들이 원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예술계열 원우들이 모두 원서를 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서를 많이 접한다고 생각하는 인문계열·사회계열·교육계열보다 더욱 많은 원서를 탐닉하고 있는 예술계열 원우들이 많다.
어느 공간이든지 ‘객관성’을 완전히 담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객관성이 ‘객관적이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장하느냐를 묻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무한소급의 오류’라고 부른다. 어학시험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학시험의 ‘객관성’을 가늠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부수적인 규정을 첨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어순해를 이수해야 한다”는 식의 규정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A라는 규정의 ‘객관성’을 보증할 수 있는 B라는 규정을 첨가하는 식의 처방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A라는 규정의 ‘객관성’을 보증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일 테다. 모든 원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토익과 토플의 일정점수를 요구하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어학시험을 아예 폐기해 버리든지. 그 시간에 책 한권 더 읽는 것이 나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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