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호 [사설 2] ‘돈’으로 가꿔가는 선진시민사회
2003-03-09 00:47 | VIEW : 3
 
121호 [사설 2] ‘돈’으로 가꿔가는 선진시민사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지난 18일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은 구래의 선거관행을 해결할 수 있는 몇가지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소선구제로 유지하되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3 대 2로 배분한다든가, 선거범죄의 신속한 재판을 위해 현행 3심제를 ‘고등법원-대법원’의 2심제로 간소화한다든가, 출신연고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막기 위해 선거홍보물에 후보자의 출신지역과 학교를 적시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은 올바른 조치이다. 이는 지역주의, 흑백선전으로 일그러진 선거전을 근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긍할 만한 처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 정당한 사유없이 투표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5천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처사이다. 사람의 필수품인 ‘물’마저 사고파는 세상이라지만, 5천원짜리 ‘기권료(?)’를 부과한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물론 정치적 무관심은 민주정치를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투표일의 날씨와 투표율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분야가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납득이 가고도 남을 일이다. 일찍이, 투표를 행사하는 권리는 정치적 참여권의 1장 1절이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정치적 무관심을 ‘벌금제’ 형식으로 해결하려는 방안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단언컨데, 투표를 행사하는 행위는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다. 투표를 행사하는 것은 투표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행해져야 하는 것이지, 투표자의 자의적인 판단과는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얼마나 웃기겠는가. 투표장에서까지 효자노릇(?)하겠다고 대리투표(?)가 성행하는 판에, 돈 몇푼이 아까워서 ‘씩씩’거리며 투표하는 꼴이라니. 더구나 병역의 의무마저도 미꾸라지처럼 ‘쏙쏙’ 빠져나가는 판에 ‘투표의 의무’가 제대로 수행되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 아닌가.
물론 정부에서도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투표율 제고를 통해 선진시민을 만들고 정치선진국을 만들겠다는 데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한 시민의 인격을 올바르게 형성하는 데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투표율 수치올리기에만 연연하는 식의 발상은 ‘근대적’인 태도가 아니다. 정부는 GNP 수치올리기에만 연연하다가 ‘삼풍백화점 참사’와 같은 재앙을 겪은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투표장 참사(?)’가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다.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는 어찌보면 정치적 참여의 한 방식이다. 정치판 전체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 혹은 선택할 정치인이 없을 경우에 우리가 선택할 방법은 두 가지이다. 5천원을 지불하든지, 아니면 눈 딱 감고 한순간만 양심을 속이는 것. 정부가 무엇을 원하는 지 모르겠다. 재정확보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국민 모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려는지. 답답하면 솔직히 말해라. “국민여러분! 국가재정이 부족하니 좀 도와주십시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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