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호 [思고뭉치] 지식은 아이처럼 매일 자라야 한다
2003-03-09 01:31 | VIEW : 4
 
158호 [思고뭉치] 지식은 아이처럼 매일 자라야 한다

이경민/문예창작학과 석사

푸르렀던 후박나무 잎이 서서히 그 색을 바래 가는 가을에 나는 캠퍼스에 있지 않고 분만실이라는 최전방에 와 있다. 밤낮없이 산모와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나는 자궁수축억제제로 아기의 안위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아직 세상에 나오기에는 작고 미숙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두 가지 전쟁에 임하게 되었다. 하나는 논문을 마감하는 것이고 하나는 뱃속의 아기를 키우는 일이었다. 둘 다 힘든 일이었다. 아이가 집중된 영양분과 정성 그리고 휴식으로 자라야 하는 것처럼 내 연구과제도 밤낮없이 불어 나야할 만큼의 지식과 비평력으로 마감돼야 했기 때문이다. 생명을 잉태하고 그 생명을 키워서 세상에 내놓는 일이 위대한 자연의 일이라면, 작은 인간의 일로서 대학원에서 숙성시켜야 할 학문 또한 어렵고 힘든 과정을 필요로 한다. 초기 태아는 새끼손톱보다도 작지만 하루하루 자라나 만삭이 되면 그 배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아이가 6개월이 될 때까지 하루 10시간 이상 컴퓨터와 씨름하면서 논문을 썼고 무사히 마감했다. 항상 뱃속의 아이에게 ‘조금만 참아 줘, 엄마에게 힘을 줘’라고 부탁하면서 내놓은 논문이지만 조산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부족한 것이 많았다. 결국 둘 다 조산을 하게 되는 걸까. 초기의 무리 때문인지 9개월 된 태아가 ‘엄마 힘들어요’ 소릴 지르고 있다. 양수가 흘러나오고 진통하듯 배가 아파 왔다.
결국 분만실을 옆에 둔 조산위험산모실에 누워 있게 되었다. 논문과 컴퓨터 전자파로 태교를 한 아이, 노력보다는 그저 바램만으로 건강을 지속해온 내 아이. 하지만 아이가 매일매일 자라나듯 내 지식도 내 학문도 매일매일 자라야 한다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다.

처음엔 세포였다가 뇌와 심장 그리고 하늘거리는 솜털을 가진 아이가 되는 것이다. 이 위대한 메커니즘을 나는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두 일 모두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지만, 못 다한 정성을 아이에게 쏟고 나면 다시 열심히 공부할 기회가 올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아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아이를 낳고 나면 다시 시작될 두 가지 일, 육아와 글을 쓰고 공부하는 일 모두 열심히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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