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호 [편집위원의 세상살기] 성은미 편집위원
2003-03-09 01:35 | VIEW : 5
 
158호 [편집위원의 세상살기] 성은미 편집위원

대학원에 드디어 입성했다. 대학원에 하루가 멀다하고 놀러왔지만 수업은 오랜만에 듣는 것이라 긴장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입학 후 처음 수업이 있기 전날, 혹시 지각은 하지 않을까, 공책은 챙겨가야 할까, 어떤 옷을 입을까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쳐가며 수업을 임했다. 물론, 수업시간에는 내가 정말 교수의 설명을 이해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열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과연 한 한기동안 수업을 잘 들을 수 있을까. 빽빽하게 쓰여있는 커리큘럼을 보면서, 혹시 중간에 수업을 포기하고 도망가지는 않을까. 내가 머리가 나빠서 선·후배들 앞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머리가 복잡하다.

그래도 주의를 둘러보면 학교 풍경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밤만 되면 학교 앞 술집을 찾는 학생들, 정경가든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러하다. 수업시작 시간에 시계를 쳐다보면서 뛰는 학생들의 모습 역시 달라진 것이 없다. 어디에도 지각하는 학생이 있고 둘레둘레 모여 술 마시는 학생은 있는 법인가보다.

대학원의 모습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혈색 없고 삶에 찌든 얼굴들은 어딜 둘러봐도 변하지 않았다. 교수의 요구를 당당하게 거부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화를 내고,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짜증내는 모습들도 여전하다. 대학원 내에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 역시 너무나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있다. 게다가 여기저기 난무하는 거짓말과 허풍 그리고 소문, 정말 사람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런 익숙한 학교풍경이 나에게 전혀 반갑지 않다. 오히려 나를 더욱더 긴장시키면서 이제 여기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들을 하게 한다.

비겁한 보호본능이 눈을 뜬다. ‘내 몸 하나 지키는 것이 버거운걸’ 하는 변명이 나를 지탱한다. 많은 사람들과 했던 약속들을 잊어버리고 싶고 내 욕심과 내가 개인적으로 필요한 일들만 생각한다. 나는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진다. 입학하지 전에 나는 후배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저렇게 이기적일 수 있을까. 저 사람들에게는 후배도 없고 선배도 없는가. 자기들이 하기로 되어 있는 약속들을 왜 지키지 않고 오직 자기 논문에만 신경을 쓸까하는 답답함을 느끼면서 신랄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던 나 아닌가. 나에 대한 관대함과 타인에 대한 철저함이 쓴 입맛을 다시게 한다.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한지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석사 때는 차라리 용감했다. 머리만 커서 생각은 많고 겁만 잔뜩 들어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아직은 나를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아이라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서 불쑥 불쑥 싹을 띄우는 ‘오기’란 놈이 날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오기’란 놈은 아직 내가 내 삶에 욕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나만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은 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의미한다. 비록 식상한 결론이지만 이게 바로 현재 나에겐 진실이다. 어떠한 원칙을 갖고 살아갈 것인가. 머리는 복잡하고 겁은 나지만 눈을 부릅뜨고 입술을 꼭 다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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