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호 [특집-공동글쓰기] 대학원생 K, 성(城)을 향해 오르다

K는 오늘은 꼭 말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무슨 돌쇠다루듯 하는 그들에게 오늘은 꼭 말하리라 다짐했다. 무슨 카르텔이니, 커넥션이니 하면서 삼겹살에 소주 마실 때는 이빨에 상추가 낀 줄도 모르고 떠들던 사람들이 막상 닥치니까 선후배간의 정을 들이미는데는 정말 할 말을 잃은 K였다. 오늘은 그는 선배의 호출을 받고 학과실로 가는 길.
몇 일 전이었다. K가 대학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학부시절 동기였던 P의 입대를 앞두고 둘은 소줏잔을 기울였다. 진작부터 학문에 뜻을 둔 P는 대학원을 진학해서 논문을 앞두고 있었다. K와 P는 두어 달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주머니 속을 염려하면서 맥주 두 잔으로 회포를 풀곤 했다. 지난번 회동 때도 아무 말없던 P가 몇 일 전 전화를 걸어 자신이 입대한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그 나이에도 입대하는 것이 서러운지 P는 술에 취해버렸다. K는 P를 부축해 자신의 방으로 데려왔다. P를 눕히고 담배를 한 대 빼물은 K의 귀에 P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술집에서 쓰러지기 직전에 P는, 아주 똑똑하던가, 아주 돈이 많던가. 둘 다 없으면 닥치고 따라야지. 수수께끼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P는 쓰러졌다.병신. K도 P옆에 누워 곧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번이 두 번째다. 오늘은 말하리라고 K는 학과실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쥔다. 역시나 학과실안에는 K의 동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K도 그 사이에 슬쩍 낀다. 역시나 선배는 늦는다. K는 이것부터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오늘의 전의를 불사른다. 주변을 둘러본 K는 더욱 힘을 얻는다. 자신의 동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말할 때 한 마디씩만 거들어도 뭔가 달라지겠지. 당황할 선배의 모습을 생각하니 K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선배가 들어온다. 역시나 일꺼리다.
이번 일은 간단한 거야. 그냥 학교마다 돌아다니면서 설문지 돌리고 정리만 해주면 돼.
K의 귀에는 학부 시절 자주 불렀던 투쟁가의 첫 소절이 들렸다. 예속과 억압에서 깨어난 젊음, 그대는 무엇을 배웠는가. K는 더 이상 P의 눈물을 헛되게 할 수 없었다. 비록 그때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알고 있기에 침묵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K는 주먹을 불끈 쥐고 목에 힘을 주어 선배를 불렀다. 선배님., 왜? 잠시의 침묵이 흐른다. 자신의 동기들의 눈길과 기대가 모이고 있음을 느낀 K는 입을 열었다. 한 장에 얼마씩이죠?,  ……, 병신.





지킬박사와 하이드 혹은 늑대인간

벌써 1년 반 째. K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이 문을 연다. 젠장 여긴 물갈이도 없나. 만날천날 보는 그 얼굴이 그 얼굴. 지겹기까지 하다. 오늘도 그들의 하루는 여전하다. 자신들도 알지 못할 희한뻑쩍지근한 말들을 일삼으며, 금전적 사치를 비웃는 듯 중얼중얼 지적 사치들을 내뱉는다. 좀 쉽게 말하면 어디 덧나나. K는 늘상 자신들이 갖는 개별적 관심이 마치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관심사인양 떠들어대는 그들을 향해 되뇌이곤 한다. 쌀값이 얼만지나 아냐. 물론 K도 근래 들어 저들의 틈에서 허풍 꽤나 떨곤 한다. 뭔가 알고 싶은 욕구라기보다는 그저 따돌림이라도 면해야겠다는 생각이 K를 그들과 동화시켰다.
그게 언제였던가. N과 식사를 했을 때, K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더러워 죽겠네. 오물오물 말하랴 씹으랴 정신없는 N의 입을 쳐다보며 K는 한심한 눈길을 보냈다. 저 병신은 매너 팔아다 학비에 보태 썼나. 아직 젓가락도 대지 않은 K의 자장면에 N의 침이 한참 튀었으니, 궁시렁 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개뿔.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지껄이는 것도 짜증날 일인데, 연신 밥풀이며 침을 튀겨가며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N의 일상적인 모습에 K는 진작부터 신물이 났었다.
며칠 전 K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후배 S에게 점심을 샀다. 늙스구래한 나이에 쫄병생활을 면할 길이 없던 K에게 S란 존재는 마냥 귀엽고, 어쩌면 후배라기 보다는 자식이나 조카쯤으로 보였을는지 모를 일이다. K는 밥을 먹는 내내 뿌듯해하며 연신 학문이 어떻다는 둥 문학이 뭐라는 둥 지껄여댔다. 허허, 나도 거짓말 꽤나 늘었군. 좀처럼 수저를 들지 않는 S의 국밥에 K의 입안 음식이 여러번 튀었다. 말없이 바라보는 S의 눈빛이 한심스러운 듯 했다. 얼마 전 K의 눈빛이 어느새 S에게 전염됐나보다.
대체 내가 뭔 소릴 했던 거지.
어느새 대학원의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 자부하는 K는 사실상 그가 적응했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고작 그가 적응했다는 것이 단순한 분위기 정도는 아닌가하는 생각에 못내 씁쓸해 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주문처럼 되뇌이는 K의 말. 에라 모르겠다. 논문이나 후딱 써버려야지.





여기는 진도의 끝자락 팽목항이다. 원주를 떠난 K는 대전, 광주, 해남을 거쳐 어제 밤늦게 두륜산 입구 유선여관에 도착했다. 문화유산답사기 유흥준 덕택에 오래된 기와집 여관이 유명해졌지만, 라면과 라면 포장지가 다르듯 그곳 역시 마찬가지로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있는 것이었다. 여관 주인여자는 넉넉한 시골 아낙의 웃음과 인심이나 향토적인 정취를 가지기 보다는 그저 권태롭고 일상적인 심지어 무뚝뚝하기까지하다. 고장난 커피메이커에 불만과 넋두리를 늘어놓는 바그다드카페의 여주인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징그럽게 환상적이지 않아서.
그들에게도 일상이 있듯이 K의 일상이 다른 일상을 만나러 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희망을 잡으러 온 것이건 혹은 정신무장의 계기이건 간에 세상 곁으로, 육지로 그리고 사회제도로 돌아가기 위한 K의 주문(呪文)은 팍팍한 다리와 발목의 피로감으로 시작된 셈이었다. 제도 안에서 K의 일상도 다리와 발목의 피로감의 연속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국회 도서관으로, 도서관 복사기 앞에서 서 있기를 두어 시간, 그리고는 다시 도서관으로, 논문뭉치와 노트북 그리고 사전을 들고 헤매다 집으로 돌아오면 12시 넘기기가 일쑤였다.
K는 남도 땅 끝자락까지 여러 고개를 넘어왔듯이 그의 삶에 있어서도 한 고개를 넘고 싶었다. 논문심사를 불과 몇 일 앞두고 끙끙 안고다니던 자료뭉치들을 내던지고 이렇게 길을 떠난 것은 사춘기 일탈 심리 같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취업을 하든 계속해서 공부를 하든, 어떤 결정이든 마음먹어야 하는 K에게 있어 이번 여행은 탈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려던 일보직전, 다시 학교에 머물 것을 결정하고 2년여를 성(城), 아랫마을에 머물다 논문을 쓰면서 고민하게 되는 상념들. 상표처럼 K의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많은 역할 속에서 악하며 외마디 비명을 질러대다가 어정쩡하게 성(城) 아랫마을에 달라붙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놀라 도망쳤다. 계속 머무를 것인가, 앞으로도 머무를 수 있을까, 이것만이 내게 주어진 길인가라는 물음에 K는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아닌 그 무엇에 끝까지 싸우고 싶어 길을 떠나왔지만, 선뜻 그 물음에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다시 성(城), 기슭에서

대학원, 성(城) 기슭에 어슬렁거린지도 어언 5년째다. 오늘은 1년에 한 번, 성주(城主)가 성 꼭대기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여준다는 기념일이다. 박사 1차인 K는 성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다. K는 성주를 아직도 만나본 적이 없다. 성주는 학문하는 방법과 학문의 길에 도통한 사람이라 한다. 그러나 성주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암시와 알레고리로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가며 공부를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무표정과 비유로 알려준다고 한다. K뿐만이 아니라 K보다 먼저 도착한 다른 선배들도 성주의 얼굴을 본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성주의 얼굴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성 안에서 일하던 60대의 아저씨들이다. 그 아저씨들을 통해 성 안에서 읽히던 몇 권의 책을 건네받아 그 책들을 텍스트 삼아서 세미나를 하고 있다. 성 기슭 마을에서 K와 동료들은 성 안에서 진행되는 진정한 학문을 준비하기 위해 밤샘 작업과 배고픔을 견뎌가며 살아가고 있다.
K도 사실 박사 시험을 쳐서 성 기슭 마을에 오기 전엔 기슭 마을 보다 낮은 아랫마을에서 석사 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박사 입학하기 전, 1년간은 항상 안개가 끼어있는 성 마을이 싫어 도회지로 나가 살았었다. 도회지 사람들은 똑같은 술을 마셔도 쓸데없이 진지하거나 무거운 화제는 꺼내지 않으면서 흥겹게 마실 줄 알았다. K는 3년간의 성 아랫마을 석사 시절을 마치고 내려오자마자 도회지의 한 회사에 취직해서 도회지 사람들과 어울렸다. 예술의 전당으로 클래식 동호회 사람들과 오페라를 보러 가기도 했고 재즈 동호회 사람들과 재즈 파티에도 몰려가 함께 밤새우기도 했다. 자주 가는 술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만나게 된 여자들과 어울리며 밤새 맥주병의 뚜껑을 헤아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생활도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가슴 속에 무언가 텅, 비어있는 그 무언가가 찾아왔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이라는 청춘의 트라이앵글 비슷한, 그 무엇은 이미 20대에 겪었는데, 30대에 찾아온 그 무엇은 20대의 그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권태와도 비슷한 그 무엇이었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과도 비슷한 그 무엇이었다. 그것이 왜 K 자신의 주변에서 얼쩡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1년만에 다시 여기 성 기슭 마을로 왔다. 오늘 성주 얼굴을 보게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성 근처에 있을 때, 권태와 우울과 이상(理想)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안개는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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