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호 [특집-쾌락] 쾌락, 영화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훔쳐보는 나르시시즘

김선아 / 영화학과 박사수료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쾌락에 대한 논의는 영화학의 단골 주제이다. 영화학자들은 정신분석학과 문화 연구, 영상 인류학 등 많은 인접 학문을 끌어들여서 영화의 쾌락에 대해 논했다.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은 영화학자들은 영화 관람을 꿈꾸기와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거나 영화가 관객들에게 카메라와의 동일시나 거울 단계라는 이미지와의 오인된 동일시를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에 상상을 실제에 투사하는 가장 강렬한 시각 매체라는 점을 지적했다. 사진보다 더 현실의 완전한 시각적 재생을 꿈꿨던 뤼미에르식 사실주의와, 몸짓과 희극이 지배하던 무성 영화 시대를 통과하면서 영화에는 클로즈업과 편집이 들어선다. 그러면서 영화는 어찌됐든 관객의 온갖 도착적 욕망의 미쟝센이라는 환상의 짐을 지게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영화관람은 현실원칙이 아닌 쾌락 원칙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는 말은 타당하다. 또한 영화를 보는 것에서 오는 쾌락이 섹슈얼리티의 전치, 즉 영화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자기애적 쾌락, 자신이 아닌 타자를 극장의 어둠 속에 몰래 훔쳐보는 관음증적 쾌락 혹은 공포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대상을 과장하거나 전치시키는 물신주의적 쾌락에서 기인한다는 영화 정신분석학 논의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관객은 법과 도착적 욕망간의 금지와 탈주 놀이에 자신을 내맡기면서 영화를 즐기는 것이다.  

영화 자체는 이미 자신이 환상이 될 모든 채비를 갖춘 듯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강렬한 사운드와 이미지, 집단적이고 제의적인 관람이라는 영화의 물리적 구조는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홈 시어터가 갖춰져도 멈출 수 없는 사회적 이벤트로 영화를 만들어 버렸다. 인구 칠백 만이 본 <친구>를 안 본다면, 최초의 칸느 영화제 수상작인 <취화선>을 안 본다면, 할리우드와의 동시개봉과 더불어서 할리우드 흥행 순위를 갈아엎은 <스파이더 맨>을 안 본다면 당신은 문화적인 소외감과 심리적 박탈감을 경험할 것이다.

이제 영화 관람은 부산에서 열린 한국의 월드컵 축구 경기를 잠실 운동장에서 함께 관람한 것과 같은 경험이다. 여기에서 관객은 정신분석학에서의 도착적 욕망의 은밀한 투사가 아니라, 사회적 이벤트에 가담, 공모, 협력했다는 지극히 사회학적인 집단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영화는 상품 소비사회에서의 공적인 문화적 산물로서 사회적 통합자의 역할을 멋지게(?) 해낸다. 이렇듯이 욕망의 미쟝센으로 영화를 보는 정신분석학적 연구와 사회적 이벤트로서 영화를 보는 문화론적 연구가 영화와 쾌락의 상관성을 밝혀주고 있다.      

대중영화는 자체의 내러티브 구조와 스타, 풍경, 테크놀로지 그리고 당대의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이 절합된 복합적이고도 조작적인 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영화에서 쾌락이 구성되는 장소는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섹슈얼리티에 기반한 정신분석학적인 개별적인 쾌락을 동질적 정체성의 확인이라는 집단적 쾌락으로 굳히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즐거운 쾌락을 들뢰즈는 왜 참기 힘들다고 말했을까. 우리들 중 쾌락이나 동일시는 고사하고 대중 영화가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불쾌하게 만들지만 않기를 바라는 이가 있다면 이들은 어디에서 자신의 쾌락을 발견할 것인가. 공모된 카메라-등장인물-이야기, 그에 대한 획일화되고 지배적인 쾌락과 재미의 소비 앞에서 그 관객들은 아마도 영화를 자신의 유토피아적인 정치적 비전, 영화의 결을 거스르는 독해 그리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거울로 사용하면서 또 다른 쾌락을 생성하고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