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호 [특집-쾌락] 쾌락, 의학 앞에서 실체를 드러내고

쾌락의 신경회로를 타고 흐르는 고통

허시영 / 정신과 전문의, 나눔 식사장애/비만 클리닉부원장

쾌락(pleasure)은 삶이 유쾌하고 기쁘고 즐거운 상태라고 국어사전에는 정의되어 있다. 그런데 삶이 유쾌하고 기쁘고 즐겁다는 것은 보편적인 정의가 무척이나 어렵다. 우리가 흔히 겪듯이 어떤 이에게는 유쾌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불쾌한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쾌락은 개인에 따라 각기 다른 기전에 의해 중계되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각 개인에 따라서도 상황이나 경험에 따라 다른 기전을 거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쾌락은 어떤 물질을 갈망하는 행동
1990년대는 뇌의 10년(decade of the brain)이다. 연구방법론의 발전은 인간의 뇌에 대한 많은 의문에 대한 답을 주었다. 이런 노력은 우리 인간에서 나타나는 많은 현상들을 뇌를 통해 볼 수 있게 하였고 설명을 가능케 하였다. 이전에는 형이상학적인 논의의 주제가 되었던 많은 인간의 현상들이 물리적이고 화학적이며 생리적인 현상으로 설명가능해 지기 시작한 것이다. 쾌락의 생리학은 인간에게서 즐거움을 지속해서 찾거나 아니면 고통을 회피하려는 행동이나 현상이 어떤 뇌의 기전을 통해 이루어지는가를 밝힘으로써 설명이 가능하다. 이런 현상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인간이 특정한 물질을 이런 목적으로 반복적으로 지속해서 사용하는 것, 즉 약물이나 물질에 대한 중독 현상이다. 어떤 물질을 갈망하는 행동은 사회문화적 요인, 물질에 대한 접근 용이성, 개인 정신병리 등이 상호 작용한 결과이며 동시에 개인의 신체적인 소인과 생리학적인 요인들도 관계된 결과이다. 즉, 생물정신사회적 모델(biopsychosocial model)로 설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뇌의 관점에서 볼 때는  어떤 물질을 계속 사용하게 만드는 즉, 중독을 만드는 기전은 인간의 뇌에 있는 중추보상체계(central reward system)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체계는 뇌의 변연계(limbic system)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신경세포들의 일종의 연결고리(circuit)이다. 이 신경세포들의 연접부에는 특정한 신경전달 물질이 분비되고 있는데 특정 약물이나 물질이 이런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억제시키거나 촉진시키면 이 회로가 활성화가 되어 우리가 쾌락을 느끼게 한다. 일단 이 회로가 활성화가 되면 활성화를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 그런 느낌에 대한 추구를 반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이 알려져 있는 필로폰(메트 암페타민)과 같은 약물은 배측 피각부위(ventral tegmental area)에서 측중격핵(nucleus accumbens)으로 뻗는 도파민 신경세포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물질의 분비를 촉진시킴으로써 이 뇌-보상회로를 활성화시켜 중독현상이 일어나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런 즉각적인 변화 외에도 장시간 약물사용시에는 이런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나 유전자수준에서의 변화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보상회로의 반복적 추구 행동
최근 들어서는 뇌-보상 회로의 활성화가 약물과 같은 물질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아준다든지 부드러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감각적인 자극이나 음식 혹은 도박이나 심지어는 일에 대한 성취감, 성적인 쾌락 등도 뇌-보상회로의 활성화에 의해 중계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결국 뇌-보상회로는 어떤 자극이든 자극이 이 회로를 활성화시켜 즐거움이나 쾌락으로 경험하게 되면 이런 반응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추구하게 하는 일종의 최종 공통경로(final common pathway)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느끼는 모든 즐거움, 좋은 느낌이나 광범위한 의미에서 쾌락은 뇌-보상회로에 의해 중계되고 이것의 활성화를 유지시키기 위해 반복적으로 그 행동을 추구하게 만든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이 회로의 활성화에 의해 일어나는 반응을 어떻게 경험하는가는 각 개인이 가진 경험이나 여러 특징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이런 차이가 같은 자극이라도 서로 다르게 느끼는 차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회로가 바로 즐거움만을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반응도 중계한다는 것이다. 일단 이 회로가 활성화되어 즐거움을 경험하면 이 회로의 활성화를 유지하기 위해 반복적 추구행동을 지속케하는데 이런 활성화가 지속되지 않아 나타나는 반응은 우리에게는 고통으로 경험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는 쾌락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쾌락과 고통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라는 말처럼 쾌락과 고통이 뇌의 한 곳에서 관장되고 있다는 것은 쾌락의 추구가 종국에는 이런 추구의 결과로 나타난 고통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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