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호 [특집-쾌락] 쾌락, 여성의 옷을 벗기고

여성의 에로티시즘, 신체에 말걸기

김성희 / 신문방송학과 박사1차

한참 동안 여성의 성적 쾌락이라는 글자를 타이핑해 놓고 노려보기만 한다. 은밀한(?) 이야기를 풀어놓자니, 이것저것 잴 것도 많고 자꾸 가지를 치게 된다. 점잖을 떨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지면이 처녀들의 저녁시간은 아닌 까닭에 다소 수줍다. 게다가 여성의 성적 쾌락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풀어낼 만한 적절한 어휘들을 고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성적 쾌락은 이렇듯 우리 그녀들에게 수줍고 낯설기만 하다. 여성에게 있어 성(性)이란, 할머니 고쟁이 속에 싸매 놓은 쌈짓돈 마냥 꽁꽁 감추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의 시선, 창녀의 구멍
그렇다면, 여성에게 있어 쾌락이 수줍고 낯설고 비밀이 되어야만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녀의 성적 쾌락이 왜 음탕하고 천박스런 경험으로 간주되어야 하는가. 그 해답은 성을 둘러싼 남성적 시선, 남성적 지식-권력에 있다.
근대 담론에서 여성의 성적 욕망은 언제나 남성을 필요로 한다. 그 유명한 프로이트의 외디푸스 콤플렉스로 돌아가 살펴보면, 여성의 성기인 클리토리스는 거세된 남근으로, 여성의 질은 비가시적 영역에 놓인 부정성으로 특징 지워진다. 여성은 그 거세당한 남근을 끊임없이 욕망하며, 따라서 여성의 성적 쾌락은 클리토리스에서 질로 이행한다. 그녀의 성적 욕망은 남근을 받아들임으로써, 남근의 대체물인 아이를 잉태함으로써 충족되기 때문이다. 결국 언제나 부재와 결핍으로 존재하는 여성은 남성의 성적 대상물이 됨으로써, 스스로의 욕망을 채워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남근 선망을 향한 여성의 욕망은 성적 수동성으로 간주되는 여성성을 형성한다. 남성의 욕망에 응답함으로써 여성의 성적 쾌락은 달성되는 것이다.

즉, 남성의 시선에 의한 여성의 성은 하나의 구멍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페니스의 집이며, 남성의 성스러운 분비물이 뒤섞여 들어가는 입구이고, 그의 쾌락을 비춰주는 일종의 거울이다. 여성의 성을 구멍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배 담론 하에서 그녀의 성적 상상력 혹은 경험이 재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녀의 구멍은 비가시성의 영역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적 쾌락을 재현하는 길은, 오로지 오르가즘에 달한 남성의 연기를 통해서이다. 그의 쾌락은 여성의 쾌락을 비춰주는 거울, 아니 오히려 여성의 쾌락을 대체한 것이다. 여성의 쾌락은 페니스의 활약을 통해 생산되는 듯 보여진다.  

여성의 촉감, 두 개의 입술
하지만 여성의 성이 비가시성의 영역에 놓여있음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성의 것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은 근대적 시선으로 포착될 수 없다. 이리가라이가 지적하듯, 여성의 성적 쾌락은 시선이 아니라 촉감, 만짐(touch)에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페니스의 활약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가-성애(auto-eroticism)를 통해 스스로의 쾌락을 생산한다. 여성의 쾌락은 클리토리스의 활동성과 질의 수동성 사이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여성은 도처에 성 기관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여성의 성적 쾌락은 소유가 아니다. 여성의 쾌락은 시각적인 것, 대상화하는 것, 소유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그것은 오히려 신체의 다중성과 열림, 근접성에 따라 소통되고 교환된다. 이것이 바로 남근 중심적인 동일성의 논리에서 벗어나, 여성적 쾌락의 윤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여성들은 성적 쾌락에 낯설기만 하다. 성적 기준에 작용하는 이중 잣대는 남성에게는 적극성을, 여성에게는 소극성을 요구한다. 여성의 성적 쾌락은 결혼이라는 보증을 통해서, 여성의 성적 욕망을 소유할 권리를 부여받은 남편을 통해서만 충족되어야 한다. 남성의 성적 욕망 혹은 성적 행위는 자연스런 성장과정으로 인정되지만, 여성의 성적 욕망은 지연되며 보관되고 감추어져야만 한다. 그녀의 솔직함이 표현되는 순간, 그녀는 정숙한 여성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의 성적 욕망, 쾌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혹은 그녀의 경험을 구성하고 재현하는 것은 많은 시도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남성적 지식-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개입, 여성의 성적 쾌락을 풀어낼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과 언어들의 창조, 여성의 성적 결정권을 비롯한 신체적 권리가 중요하게 부각되어야만 한다. 성적 결정권이란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린다는 신체적 자유개념을 뜻한다.

내 자신의 신체와 감정을 소유할 권리이며, 내가 선택한 모든 사람들과 동등한 관계를 맺을 권리이고, 싫다 혹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이다. 성적 파트너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자신의 가치판단을 믿으며, 성적 쾌락을 경험할 권리이다. 여성적 쾌락은 권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쾌락은 소통이라는 점이다. 정숙한 여성/음란한 여성 어느 한 쪽에 쾌락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적 쾌락은 자기 신체에 대한 말 걸기이며, 타자와의 대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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