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호 [특집-환상, 그 퇴행과 전복 사이] 환상 5, 정신분석학

맹정현/파리 제 8대학 정신분석학 박사과정

인간의 육체는 복수적(複數的)인 장이다. 쉬운 말로 하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가령 생물학자에게 몸은 뼈, 혈관, 근육질 등으로 이루어진 유기체이고, 권력의 집행자에게 몸은 폭력과 순응이 교환하는 곳이고, 바람둥이에게 몸은 유혹의 장소이다.그렇다면 정신분석가에게 육체란 무엇일까. 이견과 오역으로 점철된 백년 동안의 정신분석학사 속에서도 정신분석가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육체는 이야기, 환상, 이미지, 꿈, 충동 등이 횡단하는 곳이란 점이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는 피나 살이 아니라 말, 이미지, 환상이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이 세상을 이야기하고, 자기만의 환상의 틀을 갖고 바라본다. 물론 그렇다고 정신분석가가 예술가는 아닐텐데, 왜냐하면 예술가는 현실을 허구화하여 현실에 구멍을 내는 반면, 분석가는 허구를 실재화하고 그것의 현실적인 효과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분석가에게 환상은 질병을 일으킬 정도로 주체에게 현실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흔히들 병은 유기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환경에 의한 기관 결손이나 영양부족, 혹은 유전적인 필연성에서 기인한 장애 등등. 병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고 치료하는 한, 의사가 하는 작업은 수의사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의 병은 동물의 병과 달리, 인간이 말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온다. 말은 참과 거짓의 이분법을 넘어서 사물을 창조하고, 인간에게 거리화의 가능성을 준다. 말하는 행위에는 사유, 상상, 환상의 행위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이 무의식의 병을 앓는 이유이다. 즉 질병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표상들의 매듭으로부터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심리적 증상만 그런 게 아니라 신체적인 증상도 마찬가지다. 가령 프로이트의 환자 도라(Dora)의 히스테리는 아버지와의 무의식적 관계가 도라의 신체를 통해서 나타난 심인성 장애다. 이렇게 정신분석의 전제는 환자의 과거 깊숙한 곳에 현재의 질병을 불러일으킬 만한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인데, 정신분석이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물론 정신분석이 주목하는 것은 과거의 실제 사건이 아니라 환상이다. 정신분석은, 어떤 사건이 어떤 장애를 유발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탐정과 정신분석가가 다른 점이다. 탐정은 범행의 장소와 물증들을 주변으로 사건을 구축한다. 목격자의 진술이 있다면, 그것은 그 즉시 하나의 사실이 된다. 말하자면 범행 속에 주체(sujet)는 없다. 반면 정신분석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게 아니다. 사건은 하나의 ‘질문’일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대개 비슷한 사건들을 겪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을 똑같이 체험하는 이는 없다. 똑같은 사건을 겪고도,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체험하고, 다른 방식으로 느끼며, 다른 방식으로 ‘응답’한다. 정신분석학의 용어로 한다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주체화’하는 것이다. 가령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매를 맞고 돌아와 엄마에게 얘기할 경우, 중요한 것은 매를 맞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아이가 그것을 얘기하고, 그것을 얘기할 땐 ‘어떤 방식으로’ 얘기하는지, 또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라는 것이다.흔히 말하는 강박증이니 히스테리니 도착증이니 하는 심적 질환은 바로 이러한 주체화의 한 가지 방식들이다.

병은 사건에 대한 하나의 답변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사건은 반드시 현실 속에 일어난 사건일 필요는 없다. 그것은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심리적인 사건, 무의식 속에 억압된 심적 현실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심적 현실이 바로 정신분석학의 또 다른 전제라 할 성욕이다. 성욕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현실이면서, 동시에 인간 자신에게 제기되는 가장 원천적인 ‘질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성욕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바로 환상이다. 환상은 인간이 성욕을 자기 나름의 관점에서 체험하고, 이해하고, ‘합리화’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환상은 인간이 자신에게 던져진 성욕을 주체화하는 창틀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상과의 관련 속에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 환상의 창틀을 통해서 내려다 본 풍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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