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호 [특집-환상, 그 퇴행과 전복 사이] 환상 4, 인터넷

염정민/정치학 박사과정

과정하나의 거대한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인터넷혁명에 기초한 정보사회로 전환하고 있다는 성급한 진단이 그것이다. 과학기술발전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확대됐기 때문에,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관계가 ‘테크놀로지와 사회의 관계’라는 맥락을 무시한 채 물화돼, 과학기술의 진보가 곧 새로운 인간 및 사회공동체 형성의 전조로서 수용되고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개발에 대한 평가 및 그 사용을 둘러싼 정치적 권력관계와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과정이 무시될 때, 극단적인 긍정과 부정의 이원적 대립상황을 맞게 된다. 따라서 기술적 기반의 변화가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어떻게 ‘삶의 방식들’에 특정한 변화들을 가져오는지 살펴보고 그 한계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인터넷사용의 대중화현상에 걸쳐있는 일상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주체 및 공동체 형성이라는 환상을 살펴보자. 인터넷사용의 일상화는 한편으로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자유로운 정보의 공유와 나눔을 가정함으로써 현실의 사유재산권에 기초한 독점적 소유체계와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공동체의 형성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다른 한편 인터넷이 채용하고 있는 수평적이고 쌍방향적인 의사소통가능성은 기존의 위계화된 사회적 관계의 재편과 동시에 독특한 행위방식과 가치관을 지닌 새로운 주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으로 포장되고 있다.그러나 인터넷사용자의 증가와 이에 참여하는 다양한 계층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겹쳐짐으로써 인터넷 자체의 성격도 변화되고 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유료화 경향이나 지적재산권을 매개로 한 상업적 도구화는 그 출발선상에서 보여줬던 상호소통의 맥락이 제거된 채 점차 시장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조짐을 보여준다. 또한 사이버공간에서의 익명성은 다양한 제약과 구속으로부터 개인주체를 해방시킬 수 있는 여지를 주지만, 여기서 비롯되는 무책임성 혹은 천박성은 오히려 국가규제를 강화시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개방적 구조와 문화 자체를 억압하는 기제로도 작용한다. 특히 주체란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형성되는 것이며, 사회적 관계란 소통의 측면에서 합의의 도출과정이자, 집합적 측면에서는 집합적 의지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사이버공간에서 주체의 분산 및 다양화 그리고 익명화 현상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관계형성을 위한 책임성과 상호신뢰의 확보가능성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저항과 연대방식의 변화에 대한 과도한 긍정을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정보통신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정치권력의 통제·감시기술과 네티즌들의 저항방식의 변화 모두 네트워크를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한편으로 정치권력이 구사하는 네트워크화는 수많은 결절점으로 분산된 것처럼 보이게 구성된 지배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네트워크는 분산된 결절점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지점과 접속돼야만 온전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구성된 네트워크는 정치권력을 더욱 강화하면서도 그 실행방식에서는 마치 그물망처럼 각 지점으로 분산되고 있다.따라서 권력의 지배전략을 간파하지 못한 채, 그 실행방식에 대한 저항으로만 형성된 네트워크가 매우 국지적이고 분산된 방식으로 남게 되고, 결국 권력작동방식 배후에 있는 중앙집권적 통제력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저항과 연대의 방식은 지배와 억압의 계기들을 드러내야 한다. 또 정보통신 테크놀로지를 효과적인 저항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설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분산된 권력 배후에 작동하는 중앙집권적 권력 자체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저항으로 진전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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