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호 [특집-환상, 그 퇴행과 전복 사이] 환상 2, 민족

유진홍 / 역사학 석사수료

료최근에 인터넷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글 하나가 있다. 각종 게시판들을 떠돌며 독도가 내년부터 사실상 일본의 수중에 넘어간다고 호들갑을 떨며 ‘우리 민족의 단결된 힘’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그리고는 모정치인의 사이트에 가서 서명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놀라운 것은 진짜로 독도가 일본에 넘어간다거나 독도를 걸고 넘어져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속히 뻔히 보이는 그 정치인의 작태가 아니다. 각종 게시판을 빠르게 감염시키고 60만명에 육박하는 서명을 받아 낸 그 놀라운 민족주의적 열정이다. 그 행위가 독도를 진짜로 분쟁지역화시켜 한국의 국가적 이해에 반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여기서 문제는 독도라는 영토에서 주권을 주장하는 한국의 국가적 이해가 아니라, 그것과는 별도로 독도와 반일로 상징되는 한국 민족주의의 문제이다.그러나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지금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민족주의적 열정들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해명한다.

근대적 의미의 민족의식, 즉 민족국가의 형성과 결부된 특정한 인간공동체의 형성이 생각만큼 오래지 않은 18세기의 일이며, 또한 민족의 구성방식 역시 생각만큼 실체가 확실하지 못한 근대의 상상된 공동체임을 알고 있다. 물론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이 다양한 것처럼, 근대 민족의식의 형성 역시 단일한 경로를 밟지 않았음 역시 알고 있다. 흔히 문화민족(Kulturnation)과 국가민족(Staatsnation)이 구분되는 민족의식 형성 방식은 속인주의와 속지주의라는 법률적인 형태를 띈다. 그러나 문화민족/국가민족의 구분 역시 서로 다른 민족적 실체들이 존재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근대적 민족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서로 다른 역사적·정치적 경험을 반영할 뿐이다. 한국 사회가 외국인의 영주권마저 배척하는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정의상 문화민족적인 민족의식을 갖고 있다고 해서, 우리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는 오천년 배달 민족의 신화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흔히, 한민족은 일찍부터 민족단위와 국가단위를 일치시켰기 때문에, 분권적 봉건국가을 극복하거나 제국을 해체하면서 등장한 서구의 민족개념은 들어맞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근대화를 부르짖다가도 민족에 관련해서 한국은 예외주의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왕조적 공동체의식이 근대적 민족의식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다. 무엇보다 근대 민족은 민족국가의 주권적인 구성원리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또는 ‘Nation’의 번역어인 민족이란 단어가 조선왕조 실록에서 한번 등장한다고 해서, 민족이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한 예외는 원칙을 확인할 뿐이다.민족의식은 민족국가와 함께, 또는 그것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근대의 산물이다.

  한국 사회가 격렬한 민족주의적 열정과 신화로 가득찬 것은, 부분적으로 한국에서 근대 민족국가가 식민지화와 전쟁, 분단이라고 하는 격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사실에 기인한다. 또한 독도문제를 통해 알 수 있듯 민족주의적 신화를 통해 자기 이익을 노리는 집단의 전략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민족주의에서 반일감정이 과거 억압적 식민지배에 대한 단순한 반동의 차원을 넘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이유는 일본이 원래부터 ‘악랄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그러나 민족주의의 허구성을 인식한다는 것이, 지금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내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부정하고 소위 코스모폴리턴적인 정체성을 급조해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총체화된 민족의 체계 속에서,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 타자를 부정하고, 그 체계에 포함되기 위해 억지 신화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민족주의의 신화를 무기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을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동원하고, 그들의 고통을 은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말한 ‘전체는 진리가 아니다’라는 말은 한국의 민족주의에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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